[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4월이면 생각되는 K 집사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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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집사님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직업군인으로 해병대 고급 장교로 월남전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예비역 준장(대령으로 제대)으로 교회 안과 밖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으셨습니다. 군인답지 않게 언제나 얼굴에 밝은 미소를 가지고 계셨으며 말은 항상 부드럽고 조용하게 하셨습니다.
한 번도 큰 소리로 남을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웃을 위하여 크고 작은 일 돕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집사님 때문에 교회엔 군대 동기셨던 다른 해병 고급 장교분들도 참석했습니다. 필자가 아는 다른 어르신은 90이 넘는 연세에도 젊어서 직업군인으로 생활하셨던 그 자세를 떨쳐버리지 못하시어 걸음걸이나 말과 행동 삶에서 항상 군인의 모습을 지니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K 집사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셨습니다. 교회 회계 집사로 봉사도 하셨습니다. K 집사님 부부를 4월이면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4·29 폭동 피해자 중 한인으로는 첫 번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은 당시 폭동의 시발이 된 지역 큰 대로변에서 대형 마켓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그 가게가 4·29폭동의 첫 표적이 된 것입니다. 성난 폭도들이 넓은 주차장으로 떼 지어 몰려들면서 각종 화염병을 던지고 부수며 상점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탈취해가는 모습이 중계방송되는 TV 화면을 통하여 전국으로 방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안전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미국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었습니다. 사건 현장마다 신속하게 나타나야 할 경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방차도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그냥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것 잡을 수 없는 속도로 폭동이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필자는 집사님의 사업 터가 폭도들에 의하여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차를 운전해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그곳으로 향하는 모든 차선이 통제되어 들어갈 수가 없어 발만 구르며 안쓰러워해야 했습니다.
폭동 후에도 폭도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쯤은 화를 내기도 하며 저주하실 만도 하신데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한순간에 생업의 터전을 잃고서 큰 절망을 당하시고 다시 회복하기도 전인 수년 후 결국 집사님은 어려운 병으로 명을 달리하시어 필자의 마음에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27일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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