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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일기]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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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1-21 | 조회조회수 :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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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로 잘 만든 작품입니다. 지난 주말, 아내와 대학생 아들과 함께 넷플릭스 4부작 드라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을 보았습니다.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이 드라마는 영국의 한 변두리 도시를 배경으로, 13세 소년이 저지른 무자비한 소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작품의 관심은 범죄의 자극성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한 가족과 학교 시스템, 그리고 이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차분히 드러냅니다.


불편한 점은, 이 아이의 가정이 흔히 말하는 ‘문제 가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평범하고, 어머니는 자상하며, 누나는 가족을 이해합니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인물은 사춘기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건실한 목수이자 배관공으로, 험악했던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더 나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애써온 평범한 중년의 아빠입니다. 그는 실패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성실했고, 사랑했고, 나름의 도덕적 기준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나는 제이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복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여러 실패가 동시에 겹친 결과에 가깝습니다.


첫째, 인스타그램의 세계입니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닙니다. 평가받고, 비교되고,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는 감정의 전시장입니다. 한 번 찍힌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고, 조롱은 알고리즘을 타고 반복됩니다. 제이미에게 인스타그램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24시간 열려 있는 수치의 공간이었습니다.


둘째,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선생과 부모는 갈등을 여전히 교실이나 가정 안에서만 파악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따돌림과 폭력,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조롱과 배제가 일어납니다. 어른들은 악의적이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실제 세계 안으로 들어와 본 적도,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셋째, 관계적 갈등을 조절할 언어와 기술을 배우지 못한 또래 아이들의 문제입니다. 학교와 온라인 공간은 더 이상 사춘기 아이들이 관계를 맺고 성숙시키는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풀기보다 터뜨리고, 조롱과 배제, 폭력으로 서열을 만듭니다. 공감은 훈련되지 않았고, 집단은 너무 쉽게 잔인해집니다.


물론 제이미 개인의 문제도 드러납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 공감 능력의 결여, 폭력성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 누구도 제이미의 속을 제대로 이해해주거나 갈등을 다르게 풀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지 못했습니다. 제이미는 점점 고립됩니다. 감정은 쌓이지만 말로 풀 통로는 없고, 분노와 수치는 안으로 곪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남은 선택지는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살인으로 터뜨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 매일 밤 술에 만취해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워 매를 때리고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아들을 자상하게 대하며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리라고 말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그 다짐은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아들을 키워왔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써 왔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이런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정말 좋은 아버지일까?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다행히 아들 이삭이는 착하게 자라주었고, 지금도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해줍니다. 그 말이 고맙고, 또 두렵습니다.


드라마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 없는 아들의 방으로 들어간 아빠는 아이가 안고 자던 테디 베어를 조심스럽게 이불로 덮어주고 그 이마에 키스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I am sorry, son. I should’ve done better.”

(미안해, 아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완벽히 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며 그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너무 늦은 사과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Rev. Don S Shin, MDiv, ThM

Board-Certified Cha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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