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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일기] 응급실에서 만난 16세 소녀 엄마의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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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1-16 | 조회조회수 : 1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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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섬기는 병원에서 16세의 아주 어린 소녀가 응급실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직 ‘엄마’라는 말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명을 품고 낳는 일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일인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나이의 소녀였습니다. 그날 그 아이는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갑작스럽게 어른의 세계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이 소녀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자신이 임신한 줄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로 설명해 줄 어른도, 귀 기울여 줄 환경도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소녀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응급실에 찾아왔고, 그것이 진통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설명도 준비도 없이, 한 생명의 삶은 그렇게 예고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응급실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호출 소리가 오가고, 의료진이 달려와 뒤늦게 아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어린 산모의 몸을 뚫고 나오며 아기는 얼굴과 몸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세상은 아이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아이 역시 세상을 견딜 시간이 없었습니다. 태어난 지 20 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작과 끝이 너무 가까워, 그 사이에 말을 붙일 틈조차 없었습니다.


잠시 후 소녀의 가족은 죽은 아이를 축복해 달라고 원목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급히 산모실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제야 소녀는 처음으로 자기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품 안에서 소녀는 분명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상처 난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소녀는 그제서야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울음은 금새 오열로 바뀌었습니다. 그 오열에는 미안함과 사랑, 혼란과 상실, 그리고 아직 말로 배우지 못한 모성의 본능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우는 소녀와 상처투성이로 죽은 아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저도 울었고 간호사도 울었고 가족들도 울었습니다. 누구 하나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방 안에 있는 모두는 이 죽음이 ‘설명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잘못을 가릴 수도 없고, 교훈으로 정리할 수도 없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한 생명이 여기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시간은 늘 정확하게 흐르지만, 이런 순간에는 시계가 무의미해집니다. 20분이라는 숫자는 기록에는 남지만, 그 생명의 무게를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생은 그렇게 수치로 정리되지 않고, 죽음 역시 통계로 위로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이 모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보는 생명은 오히려 너무도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습니다. 조금만 늦어도, 조금만 어긋나도 금이 가고 부서져 버립니다.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생사화복의 소관이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신동수 목사(시카고 엘진의 셔먼 병원과 하트랜드 호스피스의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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