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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일기] "채플린이 하는 게 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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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1-15 | 조회조회수 : 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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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칼럼니스트 신동수 목사(Rev. Don Shin)는 CRCNA 목사로, 시카고 인근 엘진에 위치한 셔먼 병원과 하트랜드 호스피스에서 풀타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전문 원목(Board Certified Chaplain)이다. 병원의 환자들과, 호스피스 환우들 그리고 가족들을 돌보는 영적 돌봄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동시에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Min.) 과정을 통해 신학과 사회, 그리고 공공 영역에서의 신앙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신 목사는 그의 칼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의 사역과 글의 중심에는 언제나 삶의 가장 연약한 자리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질문들 - 고통, 상실, 의미, 그리고 희망이 있습니다. 병원과 호스피스 현장에서 만나는 이야기들,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 신앙과 사회 정의, 그리고 한국 교회와 디아스포라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신학적이면서도 삶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컬럼을 통해서는 특정 진영의 목소리보다는, 신앙인의 양심과 사유, 그리고 공감의 시선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빠르게 판단하기보다 깊이 묻고, 단순한 해답보다 정직한 질문을 제시하는 글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전문 원목에 대한 삐딱한 시선


미국에서도 병원 원목(Hospital Chaplain)을 바라보는 시선이 늘 따뜻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같은 길을 걷는 목회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냉정한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미시간 지역의 원목 사역 총괄 디렉터로부터 직접 들은 한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어느 날, 미시간주의 한 도시 교회 담임 목사님이 교인 심방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마침 원목 사무실에 있던 디렉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그 목사님은 원목이 병원의 정식 직원으로서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무척 놀라며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아니, 매일 환자 몇 명 방문하는 게 전부인 목사가 월급을 받나요? 여기는 교회도 아니고, 설교나 목회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디렉터는 전문 원목이 되기 위해 어떤 수련 과정을 거치고, 어떤 자격을 얻어야 하며, 병원 직원으로 채용되는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이런 일이라면 아무 목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돈까지 주나 보네요"라며 끝내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한 달 뒤, 그 목사님이 사색이 되어 급히 응급실로 달려왔습니다. 함께 사역하던 동역 목사님의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 왔는데,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긴박한 트라우마 환자가 발생하면 원목의 페이저에는 즉시 'Trauma Alert'가 뜨고, 원목은 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해 현장에 대기하게 됩니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오던 목사님은 대기 중이던 원목을 발견하자마자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어쩔 줄 몰라 물었습니다. "채플린, 제가 지금 뭘 해야 하죠?(Chaplain, what do I have to do?)"


그의 눈앞에는 십여 명의 의료진이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었고, 의사들의 고함과 간호사들의 다급한 요청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피가 튀고 생사와 사투를 벌이는 처절한 현장이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사모님의 남편인 목사님은 문밖에서 눈물만 흘리며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평생 목회를 해온 담임 목사님이었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을 처음 대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그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원목을 보자마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매달렸습니다. 당시 디렉터는 속으로 '원목이 하는 일 없이 돈 받는다고 하셨던 목사님이 직접 한번 해보시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고 합니다.


대신 그날의 당번 원목은 능숙하게 상황을 주도했습니다. 의료진의 처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족과 방문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는 '군중 제어(Crowd Control)'를 시작으로, 의료진의 움직임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며 가족들이 마주할 결과에 대비시켰습니다. 그사이 가족들을 위로하며 적절한 장소에서 대화와 기도로 영적 돌봄을 제공했습니다.


마침내 의료진의 처치가 끝나고 주검 앞에 선 가족들 곁에서, 원목은 그들의 황망한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함께 울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마지막 임종 예식을 집례했고, 환자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의료진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보듬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사무실로 돌아와 환자 방문 기록을 차트에 남기고, 비로소 지친 자신의 영혼을 달래는 것으로 사역의 한 마디를 매듭지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목사님은 더 이상 "그깟 원목 일로 월급까지 받느냐"는 말을 다시는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동수 목사(시카고 엘진의 셔먼 병원과 하트랜드 호스피스의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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