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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성악선교사’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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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8-13 | 조회조회수 : 7,5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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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는 한때 “생긴 사람은 죄다 목사”라는 매우 과장된 가짜뉴스가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저 사람은 미국행  비행기에서 안수를 받았다느니, 어제까지 장로라던 사람이 갑자기 목사라고 명함을 돌리는 걸 보면 저 사람은 사기꾼이라느니...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소문들이 무성했었다. 사실 정체불명의 신학교를 나와 가지고 목사입네 하고 한인사회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던 가짜던 그런 ‘목사과잉시대’도 한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짜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목사가 되는 길이 더 이상은 선망의 대상에서 멀어진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하겠다고 신학교 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신학교 나왔으니 여기와서 목회하라고 불러주는 교회는 더욱 없다. 당연히 이민사회에 목사가 많다는 부정적인 지적질은  조용하게 수그러든 것이다. 쇠퇴의 길로 들어선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성악가다. 한인사회에 웬 성악가가 그리 많냐고 속절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성악가에 주정부 면허가 따라 붙는 건 아니다. 시인이 되려면 문단에  등단하는 과정을 거치듯 성악가에게도 음악계가 정해 놓은 시험제도가 있는 건 아니다. 꾀꼬리같이 목소리만 아름다우면 모두 성악가가 아닌가?  


그러나 시비 거는 사람들의 말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성악가라고 해서 목소리를 들어보니 거기다 대고 무슨 테너니 소프라노니 뭘 붙이기조차 민망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비 넥타이에 화려한 무대 의상 걸치고 나대는 꼴이 꼭 주제파악이 안된 사람들 같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악가가 많아지는 것을 결코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쥴리아드 음대나 카네기 멜런을 나와야 성악가인가? 성악은 학벌이 아니라 재능이다. 공연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악가가  많아질수록 한인사회 문화수준은 업그레이드되고 그들의 재능은 힘겹게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당연히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성악으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재능으로 작은 교회를 세우는 길, 굳이 말을 만들자면 ‘성악 선교사’가 되어 작은 교회들의 ‘음악빈곤’의 현실을 덜어주는 역할을 제안하고 싶다.   


작은 교회의 주일 예배에는 피아노 반주자 한 명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르간은 고사하고, 성가대나 찬양팀조차 없는 곳이 허다하다. 예배의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주는 은혜의 통로가 막혀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교인 수가 적다 보니 음악을 준비하는 손길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작은교회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작게 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한 마음으로, 더 갈급한 심령으로 찬양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교회, 사례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교회로 성악가들이 모인다. 물론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생활을 위해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도 당연히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찬양의 사막과 같은 작은 교회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라고 하면 보통 먼 나라로 가는 장기 사역을 떠올린다. 그러나 선교의 본질은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지역, 우리 주변의 작은교회들을 향한 음악 선교도 충분히 ‘선교’다.


성악 선교사는 단발성 공연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작은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함께 드리고, 찬양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몇 명의 성악가가 팀을 이루어 분기마다, 혹은 상하반기에 한 번씩 순회 사역을 한다면, 각 교회에 큰 위로와 부흥의 불씨가 되어주지 않을까? 이 사역이 단순히 ‘노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교제를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으로 확장된다면, 성도들에게는 음악 이상의 영적 감동이 전해질 것이다.


이런 사역이 지속되려면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큰 교회와 연합하여 작은교회를 지원하는 파송 네트워크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큰 교회가 사례비 일부를 부담하고, 성악가는 자비량을 더해 섬기면, 모두가 지속 가능한 선교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성악가들이 큰 교회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작은교회로도 흩어져 섬길 때, 미주 한인교계 전체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무대는, 수천 명이 모인 예배당이 아니라, 한 영혼이 눈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일 수 있다. 한 성악가의 목소리가 그 자리에 쓰임 받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찬양 사역의 완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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