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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환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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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05-23 | 조회조회수 :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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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샬럿에서 3박 4일의 짧은 일정으로 머물렀지만, 총회의 결정을 파악하고, 그 결정에 따라 한인 교회들의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여러 모임과 회의가 이어졌고, 서부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다 보면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샬럿에서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주했습니다. 총회 후 긴장하는 한인 교회들의 움직임도 살펴야 했고, 주일 설교 준비와 칼럼도 써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항에서라도 밀린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공항의 분주함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행기가 제때 출발한다고 하니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라도 설교 준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5시 7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에 줄을 섰습니다. 이제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웬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분명 비행기도 서 있었는데 왜 문이 열리지 않을까 하며 의아해하는 사이에 비행기가 15분 정도 늦게 출발한다는 공지가 떴습니다. 15분쯤이야 너그럽게 기다려 줘야지 하면서 서서 기다렸습니다. 


지금쯤이면 탑승 수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비행기는 또다시 15분 후에 출발한다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출발하겠지 하면서 다시 줄을 섰는데, 또 30분 늦게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진작에 그럴 줄 알았으면 어디 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올 걸 하면서 가방에 남아 있던 과자 부스러기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연기 끝에 6시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6:20분, 7시, 7:25분, 7시 40분, 8시 출발로 연기되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게 하더니 이번에는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하면서 옆 게이트로 옮기라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그 후에도 비행기 출발 시간은 여러 차례 연기되었고, 그때마다 합당한 이유를 댔습니다. 승무원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장을 포함해서 승무원들 여러 명이 비행기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비행기 출발시간이 10번 연기된 후에야 비행기는 활주로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5시 7분에 출발하기로 했던 비행기는 9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바람에 저녁도 건너뛰고 비행기에 올라야 했습니다. 저녁 7시경에 집에 도착해서 밀린 일을 하겠다는 기대도 자정을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수포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출발 시간이 이렇게 여러 번 연기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했고 속으로 짜증도 났지만, 목사 체면에 점잖은 체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도 차분히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일정이 있고, 계획이 있을 텐데도 무리하게 따지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곧 비행기가 이륙하겠거니 하는 기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불길한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비행 일정이 조정되는 바람에 대체 승무원이 와야 하는데 지금 호텔에서 공항으로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안내였습니다. 순간 비행기 안에는 짜증이 섞인 한숨 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그렇게 10여 분쯤 기다리자, 급하게 호출을 받고 달려온 승무원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습니다. 짜증이 환호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잇따른 출발 연기로 기대는 짜증으로 바뀌었고, 잠시 후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들릴 때였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이들에게 찾아온 승무원은 짜증의 대상이 아니라 출발을 보장하는 환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열 번의 출발 연기 끝에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치는 비행기 안에서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이제는 희망이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은혜였습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의 삶은 은혜 안에서 짜증의 대상이 아니라 환호의 대상입니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 은혜를 누리며 삽시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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