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곡과 마곡의 전쟁: 전쟁 예언이 아닌 악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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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성경 종말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본문 중 하나입니다. 세대주의적 해석은 이 예언을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 이후 종말에 발생할 실제 전쟁으로 이해하며, 마곡 동맹군과 이스라엘 측 우방을 현대의 특정 국가들과 연결하려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마지막 때’(38:8, 16), 이스라엘의 귀환, 북방 군대 등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안 두굿(Ian Duguid), 다니엘 블럭(Daniel I. Block), 레슬리 앨런(Leslie C. Allen),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등 현대 주석가들은 이 본문을 특정 시대의 전쟁 예언이라기보다, 회복된 하나님 백성을 위협하는 종말적 악에 대한 최종 승리의 선포로 해석합니다.
에스겔 38-39장은 초자연적·묵시적 특성을 지니며, 요한계시록 20:7-10에서 천년왕국과 백보좌 심판 사이의 사건으로 재해석됩니다. 세대주의자들의 문자적 해석은 역사 속에 반복되어 온 해석 방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안 두굿은 역사적 사건과 본문을 일치시키려 했던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4세기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곡을 고트족이라 주장했고, 이후 아랍 군대(7세기), 몽골 군대(13세기), 황제와 교황(17세기), 크림전쟁 당시의 러시아(19세기) 등으로 해석 대상이 바뀌어 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해석도 성경의 본의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곡과 마곡이라는 상징을 현대 국가나 정치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의 상징적 성격을 지나치게 축소할 위험이 있으며, 사건이 지난 뒤에는 무책임한 추측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다니엘 블럭은 ‘메섹과 두발’을 비롯한 북방 민족들이 당시 이스라엘에게 신비롭고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지리적 거리감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원형적 세력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따라서 ‘메섹’을 모스크바로, ‘로스’를 러시아로 연결하는 해석은 언어학적ㆍ역사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스겔 38-39장의 예언은 34-37장의 회복 예언과 40-48장의 하나님 임재 사이에서 읽어야 합니다. 두굿과 앨런의 논의처럼 이 본문이 가진 중요한 점은 곡의 정체 추적이 아니라 에스겔 전체 구조에서의 문학적 위치입니다. 34장에서 참 목자가 세워지고, 36장에서 새 마음이 주어지며, 37장에서 마른 뼈가 살아나 두 백성이 하나가 된 후, 이 회복된 공동체 앞에 마지막 적대 세력인 곡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여호와임을 열방에 알리십니다(38:23; 39:6-7). 즉 38-39장은 회복을 중단시키는 전쟁이 아니라, 악을 제거하여 회복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신학적 강조점처럼, 이 전쟁의 주체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닌 여호와 자신입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곡을 이끌어 내어 심판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십니다(38:4, 18-23; 39:7). 요한계시록은 이를 사탄이 불못에 던져지기 전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여 벌이는 마지막 전쟁으로 재해석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핵심은 ‘어느 나라가 공격할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복된 백성을 위협하는 악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에 있습니다. 곡의 패배는 군사적 승리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함의 현현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또한 중동의 역사적 국가라기보다 예루살렘성으로 상징되는 교회와 성도들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이러한 해석의 패러다임은 요한계시록 20:7-10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도 요한은 에스겔의 곡과 마곡을 특정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땅의 사방 백성’으로 확대 해석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정경적 해석을 따라 읽는다면, 에스겔의 이스라엘 이미지는 특정한 현대 국가에 한정되기보다 하나님께 속한 종말론적 백성이요, 곡과 마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보편적·종말론적 악의 상징으로 재기술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현대의 국제 정세에 직접 대응시키는 것은 상징과 은유가 지닌 ‘의미의 풍성함’ 혹은 ‘의미의 잉여’(surplus of meaning)를 하나의 지시 대상으로 축소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에스겔 38-39장의 중심 메시지는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의 종식과 악의 파멸입니다. 37장에서 백성을 살리고 연합시키신 하나님은 38-39장에서 그 일치를 파괴하려는 악을 영원히 제거하십니다. 그 결과 40-48장에서 에스겔은 완성된 성전과 생명수, 치유된 땅과 회복된 열방을 노래하는 하나님 임재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죄악은 선하게 창조된 세계에 유입된 것입니다. 죄의 침투가 본원적인 것이 아니듯, 그 척결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합니다. 에스겔 38-39장의 묵시적 종말론은 악의 횡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악의 궁극적 종말을 선언합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은 지정학적 예측을 위한 암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복된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을 제거하고 평화와 거룩의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종말론적 소망으로 읽는 것이 에스겔 전체의 흐름에 부합합니다. 폴 리쾨르는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에스겔의 예언은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풍성한 소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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