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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14. 원죄의 숲 문학: 서두부터 시작되는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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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9-23 | 조회조회수 :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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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의 첫 장면에서 이미 시작된 인간 내면의 숲 


빙점은 숲에서 시작합니다. 숲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습니다.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고, 길은 조용히 안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사람은 방향을 잃습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숲은 밖에서 볼 때는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가 됩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그런 숲과 같습니다. 이 소설은 끝에 가서야 원죄를 말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독자를 인간 내면의 숲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빙점 해동』이 “서두부터 읽는 ‘원죄’의 숲 문학”이라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빙점』의 원죄는 결말부의 교리적 설명이 아니라, 첫 장면부터 작품 전체를 감싸는 영적 공기입니다.


『빙점』의 첫 문은 평온한 가정의 문처럼 보입니다. 의사 게이조의 집, 아름다운 아내 나쓰에, 어린 딸 루리코, 안과의사 무라이, 그리고 가까운 숲과 물. 모든 것이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평온 아래에는 이미 균열이 있습니다. 나쓰에의 마음은 무라이에게 흔들리고, 게이조의 마음에는 의심과 질투가 자랍니다. 어린 루리코는 어른들의 죄가 만든 빈틈 속에서 죽음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빙점』의 비극은 갑자기 폭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조용히 자랍니다. 나무뿌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뻗어 갑니다. 한 사람의 욕망에서, 한 사람의 분노에서, 한 사람의 방치에서, 한 사람의 복수에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게이조는 아내에게 배신당했고 딸을 잃은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자리가 곧 의인의 자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의의 이름으로 복수를 계획합니다. 살인범의 딸이라고 믿은 요코를 입양하여 나쓰에가 키우게 하는 것은, 용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보복입니다.


나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머니이고 아내이지만, 그 이름들이 그의 내면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역할만으로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 의사 부인이라는 품위가 죄를 막아 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든지 자기중심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빙점』의 숲은 아사히카와의 숲이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숲입니다. 빙점은 단순히 춥다는 말이 아닙니다. 빙점은 흐르던 것이 멈추는 지점입니다. 사랑이 멈추고, 용서가 멈추고, 생명이 멈추는 지점입니다. 물이 얼듯이, 마음도 얼어붙습니다.


미우라 아야코에게 그 원인은 원죄입니다. 원죄는 단순히 조상이 지은 죄의 유전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잊고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인간의 근원적 왜곡입니다. 나쓰에의 죄는 단지 불륜의 감정이 아닙니다. 자기 아름다움과 욕망을 중심에 둔 죄입니다. 게이조의 죄는 단지 복수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앉은 죄입니다. 도오루의 사랑에도 소유의 그림자가 있고, 요코의 절망에도 절대적 용서를 갈망하는 인간의 깊은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빙점』은 “누가 나쁜가”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선한 이름을 가진 사람도 어떻게 죄의 숲에 들어가는지를 묻습니다. 의사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오빠도, 순수한 소녀도 모두 숲 안에 있습니다. 독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쓰에를 보다가 내 자기애를 보고, 게이조를 보다가 내 복수를 보고, 요코를 보다가 내 수치를 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죄를 범한 인간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죄는 언제나 숨게 만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자기 자신 앞에서 숨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숲속으로 찾아오셔서 묻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빙점』 전체에도 울립니다. 게이조야, 네가 어디 있느냐? 나쓰에야, 네가 어디 있느냐? 요코야,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독자여, 네가 어디 있느냐?


『빙점』의 숲은 무서운 숲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절망의 숲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숲입니다. 자기 의를 잃게 하고, 자기중심의 길을 멈추게 하며, 결국 절대적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숲입니다. 『빙점』은 서두부터 신학입니다. 첫 장면부터 원죄의 숲입니다. 그리고 그 숲속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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