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본향을 찾는 세 편의 귀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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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주일부터 8월 1일 토요일까지, 저는 3시간 분량의 작품들을 여러 차례 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7월 26일에는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오디세이」를 3시간 동안 관람하였고, 8월 1일에는 동양선교교회에서 친구 김원일 선생의 「수궁가」 완창을 3시간여 동안 감상하였습니다. 또한 7월 27일(월)부터 30일(목)까지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의 페퍼다인대학교에서 열린 “다윗의 장막-70시간 연속 기도회”에서는 3시간씩 진행된 성경 강해, 곧 사도행전, 로마서, 에스라-느헤미야, 에스겔서 강의에 참여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네 강의 가운데 에스겔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이스라엘의 귀향과 회복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곧 본향을 찾아 돌아가는 귀향의 서사는 인간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원형적 이야기입니다. 「수궁가」를 3시간 동안 들으면서 친구의 기억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한국의 조통달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한 뒤, 10년 전에는 「흥보가」를, 이번에는 「수궁가」를 완창해 냈습니다. 그 내용은 충성스러운 용왕의 신하 자라의 유혹에 속아 용궁까지 끌려간 토끼가 “간을 두고 왔다”는 기지로 위기를 벗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우화 해석자들은 용왕과 용궁을 권세가로, 토끼를 연약한 백성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벼슬로 유혹하는 자라의 속임수와 이에 맞서는 토끼의 재치가 조선시대의 계급적 갈등을 흥미롭게 그려 냅니다. 결국 토끼는 욕심과 허영 때문에 고생을 자초하지만, 마침내 숲속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또 다른 귀향의 대서사는 「오디세이」입니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을 마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하기까지 다시 10년, 도합 2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는 아내 페넬로페에게 청혼하며 왕궁의 재산을 축내던 108명의 구혼자를 물리치고 왕권을 되찾았습니다. 제우스와 여러 신들의 방해, 사이렌의 유혹 속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귀향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기다려 준 아내, 그리고 장성한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왕가를 다시 세웁니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고전 영화 「율리시즈」와 맷 데이먼 주연의 「오디세이」는 같은 원전을 다루지만, 그 해석과 분위기는 매우 다릅니다. 전자가 대담하고 용맹한 영웅 오디세우스를 그렸다면, 후자는 10년 동안 신들의 형벌과 고난 속에서 지중해를 떠돌며 모든 부하를 잃고 간신히 귀향한 연약한 인간 오디세우스를 보여 줍니다. 그는 트로이 목마를 고안하여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열고 트로이를 함락시켰던 것처럼, 귀향 후에도 아들 텔레마코스와 그의 스승 멘토를 비롯한 소수의 지지자와 함께 하룻밤 사이에 왕궁을 되찾고 정적들을 제거합니다. 집을 청소하지 않고서는 궁정의 평안을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결국 이타카 왕궁에서의 마지막 전투로 이어지고, 피의 대가를 치른 후에야 왕가의 평화가 옵니다.
세 번째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에스겔 선지자가 받은 회복의 계시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고, 포로 가운데 있던 에스겔은 회복의 비전을 받습니다. 지도자의 회복, 땅의 회복, 백성의 회복, 두 나라의 연합, 성전의 회복, 절기의 회복, 그리고 통치의 회복이 차례로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았지만,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을 예언으로 약속받습니다. 포로 생활의 절망 속에서 그들은 회복과 소망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각 작품은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고전이지만, 서로 다른 장소에서 3시간이나 되는 각각의 작품들을 접한 저에게는 모두 ‘본향 찾기’라는 하나의 주제로 다가왔습니다. 평화롭고 우애 있으며 안전한 가정에 대한 소망,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고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공동체에 대한 소망, 통곡과 부르짖음 없이 명절을 즐겁게 지키는 나라에 대한 소망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상입니다. 고전은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 호소합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과거와 자연의 질서, 그리고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현실이 복잡하고 고단할수록 사람들에게는 더욱 세상을 견디게 할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현실 도피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산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서사가 더욱 절실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현실을 잊게 하는 백일몽이 아니라, 본향을 향한 간절한 열망과 종말론적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토끼에게는 안전한 숲속의 집이, 오디세우스에게는 그리운 이타카의 가정이, 에스겔에게는 회복된 예루살렘이 삶의 이유였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그네의 삶을 지탱하는 이들은 천국이든, 지상이든, 혹은 아늑한 전원이든 저마다의 본향을 꿈꿉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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