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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영혼의 시차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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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6-12 | 조회조회수 :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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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달 말, 2주 동안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시차의 무서움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흔히 Jet Lag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여러 시간대를 지나는 장거리 비행 후, 우리 몸의 생체 시계와 도착지의 현지 시간이 어긋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피로와 수면 장애를 말합니다.


인간의 몸은 약 24시간을 주기로 수면, 체온,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는 ‘일주기 리듬' (Circadian Rhythm)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트기처럼 빠른 속도로 여러 시간대를 이동하면 몸의 내부 시계가 새로운 시간대를 따라가지 못해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낮에는 졸리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피로감과 무기력, 두통, 소화 불량까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 지역과 한국의 시차는 현재 14시간입니다. 가을에 미국의 서머타임이 끝나면 15시간이 됩니다. 서울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시카고는 아직 전날 저녁인 셈입니다.


몸은 이미 미국에 돌아왔는데 제 몸속 시계는 아직도 한국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새벽 두세 시면 눈이 번쩍 떠지고, 낮에는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데도 몸은 지금이 낮이라고 착각하고, 한낮에 일을 하고 있는데도 몸은 지금이 한밤중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이 새로운 시간대에 적응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차에 시달리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종종 큰 시차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호스피스와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은 삶의 거대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 어린 자녀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사람, 갑작스러운 장애로 남은 인생이 막막해진 사람,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새로운 현실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여전히 이전 시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 말기암 진단을 받고 남은 시간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족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그의 전화번호와 SNS를 지우지 못하는 아내도 있습니다.

*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는 몇 년이 지나도 아이의 방을 마지막 날의 모습 그대로 간직합니다.

* 갑작스러운 장애를 얻은 사람은 현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뛰고 달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합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어떤 이는 지금도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그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영혼의 시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몸이 결국 새로운 시간대에 적응하듯 영혼도 결국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괴롭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그러하듯, 우리의 영혼도 결국 조금씩 새로운 시간에 맞추어집니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실과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때마다 영혼은 뒤죽박죽된 시차 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영혼은 다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자주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계절에 적응할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억지로 일어나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눈물이 마를 때까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제가 보니 3주가 지난 지금은 저의 시차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적응된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몸이 새로운 시간에 익숙해진 결과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상실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하루아침에 아픔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슬픔은 조금 옅어져 있고, 우리는 다시 웃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주 동안 꼭두새벽에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저는 영혼의 시차 적응으로 힘겨워할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시간도 천천히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웃음과 삶의 기쁨을 허락해 주시기를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영혼이 어떤 상실과 변화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몸이 새로운 시간에 적응하듯, 영혼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천천히 회복됩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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