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권사님, 하나님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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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로 호텔에서 지내시는 권사님 한 분을 심방했습니다. 평생을 아드님 곁에서 지내시던 추일순 권사님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몇 달 전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도착했을 때 권사님은 마침 목욕 중이셨고, 잠시 후 다시 찾은 방 안에는 방금 씻고 나오신 권사님이 정갈하고 고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셨습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머물러 오신 분 특유의 기품이 방 안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아드님 김대봉 집사님, 손녀 김희진 집사님과 함께 예배드릴 때, 많이 쇠약해지신 권사님의 육신을 보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시는 찬송을 여쭈니 권사님은 주저 없이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를 부르자고 하셨습니다.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 벗어 버렸네’ 그 가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평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본향을 바라보시는 권사님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라는 후렴을 힘주어 부르실 때 권사님은 이미 하늘나라의 생명 시냇가를 거닐고 계신 듯보였습니다.
예배 중 성경을 읽으려 할 때, 권사님께서 성경을 암송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성경을 전부 다 외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다 외우지’라는 의심이 들려는 찰나였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정말 성경 전부를 또박또박 암송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요한계시록” 성경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신 권사님은 또 하나 외울 것이 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아이처럼 웃으셨습니다. 백 세 가까이 되시면서 육신이 약해지는 것만큼 기억력도 급속히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생각나시면 언제든 말씀해 달라는 말과 함께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말씀을 듣는 중에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환한 얼굴로 암송을 시작하셨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권사님이 그토록 찾으려 했던 마지막 기억의 조각은 바로 ‘사도신경’을 통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권사님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틀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외우고 싶어 하셨던 것은 그토록 사모하시던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사도신경에 담은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부르시던 찬송은 그토록 사모하시던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시겠다는 소망의 노래였습니다.
정갈한 모습으로 성경 전부와 사도신경을 막힘없이 외우시던 똘똘한 권사님은 이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평생을 함께 지내며 정을 나누던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김대봉 집사님과 한없는 사랑으로 돌봐주셨던 할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하는 김희진 집사님을 비롯해 남은 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우리도 권사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헌신, 그 순전한 믿음을 따라, 언젠가 마주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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