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품고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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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을 강제로 체결했을 때,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말은 ‘오늘을 목 놓아 통곡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사설에서 장지연은 일본의 강제적 조약 체결이 원천 무효임을 주장하면서 ‘아아 분하도다! 우리 2천만 타국인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 황성신문의 발행 부수는 3,000부에 불과했습니다. 이 논설을 알리기 위해 10,000부를 더 발행했지만, 그래봐야 2천만 동포를 운운하기에는 한참 모자랐습니다.
1948년 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에 걸쳐 서울신문에는 김구 선생이 쓴 글이 실렸습니다.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대신 ‘통일 정부’ 수립을 호소하며 쓴 이 글에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읍고(泣告)’라는 말은 ‘눈물로 호소’한다는 뜻입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그동안 억눌렸던 언론계도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미군정이 언론의 완전한 자유를 약속하고 신문 발행을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바꾸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신문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문이 속속 생겨났고, 신문마다 발행 부수도 늘어나 서울신문이 52,000부를 찍어냈지만, 김구 선생이 말한 ‘삼천만 동포’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국 교계의 큰 어른으로 불렸던 한경직 목사는 공산주의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와 함께 1945년에 영락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에서 1972년 은퇴할 때까지 사역하였던 한경직 목사는 설교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성도들을 향해 늘 ‘오천만 동포 여러분!’이라고 하면서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천만 동포에게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렸던 장지연 주필이나, 삼천만 동포에게 ‘통일 정부’의 수립을 눈물로 호소했던 김구 선생이나, 오천만 동포에게 복음을 선포했던 한경직 목사는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만, 설교를 듣는 성도들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남북한 모든 동포를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장지연은 조선의 인구가 천만 명을 갓 넘긴 1905년, 이천만 동포를 독자로 생각했고, 김구 선생은 남한의 인구가 2천만 명을 겨우 지나고 있던 1948년에 삼천만 동포를 향해 글을 썼습니다. 또 한경직 목사는 남한의 인구가 삼천만이 되었을 때,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가슴에 품고 오천만 동포를 향해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들, 자기 말을 듣고,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기가 섬겨야 할 사람을 향해서 소리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가 섬겨야 할 사람은 사랑으로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온 국민을 품고 있었기에 그들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던 송기성 목사와 대화하면서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송 목사는 한국 최초의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의 담임 목사로 설교를 듣는 대상이 교우들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라는 생각으로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러기에 더 큰 부담감으로 사역을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 본토 최초의 한인 교회의 담임 목사로 제가 쓰는 글과 전하는 설교는 우리 교회에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미주의 한인 사회, 아니 더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750만 해외 동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사명감과 부담감으로 설교하고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민자로 사는 우리는 모두 고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고국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기를 늘 기도해야 합니다. 내일은 대한민국이 독립한 지 77주년을 맞는 광복절이자 건국 7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이 해방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감사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토대를 쌓은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민자로 부르셨을 때는 우리만 잘 살라고 부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고국을 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이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며 살아야겠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고국을 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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