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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음악, 학문소통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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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2-08-09 | 조회조회수 : 12,7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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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에 증거”(히 11:1)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아내가 가져온 “과학, 세상을 보는 눈: 통합학문의 모색”이라는 제목의 팜플렛에 눈이 끌려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 영역과는 관련없어 보이는 음악에 관한 칼럼만을 써오던 저에게는 처음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씩 읽어 갈수록 ‘그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며 흥미롭게 모두 읽었습니다. 


특히 저의 관심을 끈 것은 첫째, ‘통합학문의 모색’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역사와 교육학을 다루고 있는 딸이 저에게 바로 그것(통합학문)이 인문학의 미래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의 통로가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술 중의 예술, 음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는 저에게는 그것은 아주 솔깃한 내용이었습니다. 


더구나 교회음악에 관한 칼럼을 쓰는 저에게 ‘상상과 상식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믿음의 정의를 선언하고 있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성경구절을 과학의 논리를 통해서도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음악이라는 영역에서만 사고하는 제가, 사회의 학자들과 지성인들이 제시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학문적인 ‘인류의 구원의 문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음악인의 책임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얼마 전 인문학을 하는 딸이 왜 갑자기 피아노를 들여놓고 치기 시작했는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최무영 교수의 제3회 암곡학술상 (2019년5월27일) 특별강연입니다.


강연은 1. 과학이란 무엇인가 2. 복잡성과 복잡계 3. 물질.생명.사회 4. 사회에서 과학 5. 과학과 인문학 6. 과학과 예술 7. 통합적 사고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는 끝 부분의 극히 작은 부분만 인용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음악목회에 관계되는 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과 예술분야에 관련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하는 최무영 교수의 강연을 인용한 것입니다.


 “…과학자는 상상을 통해 가설을 얻고, 합리적 검증을 통해 상식으로 만들어 간다. 한편 예술은 이와 거꾸로 상식에서 상상을 이끌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문화의 발전은 상상과 상식의 나선형적 순환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상상과 상식의 이러한 관계처럼 과학과 예술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했다.


….현대사회는 과학의 시대라고 불리면서 인문학의 몰락이 흔히 거론된다. 사실은 과학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실용학문)의 시대로서 인문학과 과학으로 대표되는 기초학문의 몰락이 올바른 해석이다. 경영학이나 법학 등 실용학문의 시대, 기술 중독의 시대가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기술 중독이란 ‘더 빨리, 더 많이’로 요약할 수 있겠다. 더 빨리는 5G 휴대전화나 고속열차 KTX 등에, 그리고 더 많이는 재화(goods, wealth, money)에 해당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는 물질이 재화에 해당하였지만 20세기에는 에너지, 그리고 21세기에는 정보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 현대인들은 두려움과 숭배(worship, idolatry)를 같이 가지게 된다. 나아가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게 되면서 폭력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생겨나는데, 결국 인류의 파멸을 재촉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의 출현이 기초과학의 몰락과 관련되어 있듯이, 그 해결은 바로 기초과학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과 어울림을 위해서 과학과 인문학이 문화와 그 중심에 있는 예술에서 만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인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이나 과학을 기피하는 이유가 실용주의 관점에서 돈이 안 된다는 점도 있지만, 일반사회는 물론이고 다른 학문사회와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통의 문제를 같이 안고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 사이의 소통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상상력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나아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과 세계를 스스로 성찰하는 지혜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소통을 통해서 경계를 넘고 나아가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보편적 접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은 과학의 성과를 도외시할  수 없고 과학이 인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라투르(B. Latour)는 과학적 인문학(humanites scientfique)을 주창하였다. 이로부터 궁극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을 서로 수렴시키려는 의도로서 필자는 인문학적 과학(sciences humanitistique)을 제안한다. 


‘과학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언명에서 세상은 당연히 인간을 포함한다. 동시에 과학이라는 눈은 바로 인간이 가진 눈이다. 결국 과학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객체로서의 인간을 보는 것이다. 


또한 상상은 주체의 사고활동이고 상식은 객체에 대한 공통의 지식이다. 따라서 상상을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과학 활동이란 마치 동전의 앞뒷면에 비유할 수 있는 주체와 객체를 연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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