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때는 은혜로, 줄 때는 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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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주말, 남가주는 펄펄 끓었습니다. 뜨거운 공기가 지면을 가둬 가마솥처럼 찌는 더위가 지속되는 ‘히트 돔(Heat Dome)’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더웠던 9월의 첫 토요일 오후에 큰아이를 교회로 불렀습니다. 교회 인터넷이 문제를 일으켜 주일 예배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아이기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교회 사무실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본당은 그야말로 한증막이었습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기에 에어컨도 켜지 않고 작업을 하는데 생각처럼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높은 데 있는 기기를 만지기 위해서 의자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아이는 물론 저까지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사무실과 본당, 성가대실과 컴퓨터실을 거쳐 채플과 영어부 라운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기계를 찾고 점검하는 사이에 더위에 지쳐갔습니다. 완벽하게 끝내지는 못했지만, 주일 예배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무리 짓고는 집으로 왔습니다.
더위에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서 저녁은 외식하기로 하고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무거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을 하는 아이를 데리고 우선은 차에 올랐습니다.
외식이라고 해 봐야 가까운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햄버거로 한 끼 때우는 것이었지만, 그날은 조금 괜찮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불고기 햄버거를 맛있게 하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조금 멀었지만, 그래도 기왕에 먹는 것 맛있는 걸로 먹자며 아이와 함께 인터넷에 소개된 가게로 향했습니다. 그 가게가 있다는 주소를 찾아 도착했는데 가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다시 확인해 보니 분명 영업 중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가게는 없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문을 닫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확인도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배는 고파오고 아이는 아이대로 슬슬 짜증이 나는 눈치였습니다. 돌아가려는 순간 상가 끝에 있는 식당 간판에 ‘Korean Food(한국 음식)’라고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저기서 먹을까?” 아이에게 물었더니 좋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쑥 들어선 낯선 식당에는 손님 하나 없었습니다. 문소리를 듣고 주방에서 달려 나온 가게 주인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냥 나왔을 것입니다. 메뉴도 딱히 맘에 드는 것이 안 보였습니다. 그나마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있길래 하나 시키고 제가 먹을 음식도 따로 시켰습니다.
“여기서 드세요? 가지고 가세요?” 물어는 보시는데 ‘가지고 가셔서 드시면 좋겠네요’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예, 싸 주세요.” 그렇게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음식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손님은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더운 날씨에 노동절 연휴라고 해도, 한창 저녁 시간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바로 옆 식당에는 음식 사 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저기서 먹을걸’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음식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에 ‘그냥 햄버거 먹었으면 반값이면 되었을 텐데’라는 후회도, ‘저 정도면 그냥 제대로 된 한국 식당에서 먹을걸’이라는 생각도, 늦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새벽 예배에서 나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받을 때는 은혜로, 줄 때는 사명으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받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각박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받고, 사명으로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종업원들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고용주들은 종업원들에게 일한 것보다 후한 대우를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입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도 언제나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며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감사로 넘칠 것입니다. 주어야 할 때는 사명으로 알고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넉넉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다소 비싼 저녁이었지만 사명으로 치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음식도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니 그날은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 없는 저에게 주신 은혜의 날이었습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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