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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찬양과 예배갱신의 선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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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2-10-05 | 조회조회수 : 8,3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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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예배갱신의 선택의 길 

Jubilate II – 도널드 후스타드(Donald P. Hustad)


우리의 교회를 21세기로 인도해 갈 예배를 기획하고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조언(advice)을 할 수 있을까요? 생각컨대, 예배 변혁에 대한 현재의 개방성은, 보다 적절하게 개혁되는 변화를 위해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한 가지의 갱신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의사소통방식(communication methods)의 갱신입니다. 오랫동안 제한적이며 구속적인 청교도 정체성에 시달려온 교회들은 이제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예배를 표현하기 위한 예술 사용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습니다. 만일 상징적인 것들과 행위들의 사용이 강한 전례적인 언어들(liturgical words)에 대한 높아진 이해력과 결합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완전한 예배의 언어를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 스타일에 대하여 지속적인 열린 태도를 발전시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것입니다. 나이든 어른들은 그들이 불러왔던 복음적인 찬송가들이 오늘날 그들 자신의 총체적인 예배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그들의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확실히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장년층들은 그들의 부모와 함께 복음적인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유대감(fellowship)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서 역사적인 찬송가와 현대적인 찬송 모두에서 신앙의 이해와 양육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은 그들 연령에 맞는 훌륭한 현대적 신앙 표현을 노래할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오래 된 양식의 노래들도 부를 수 있도록 격려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워십 코러스와 오늘날에 나온 찬양을 함께 부르는 여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말한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러한 갱신에 대한 노력에 즉각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원 저자, 도널드 후스타드)의 음악경험에서 일찌기 배웠듯이 소수층(minority)의 지위가 항상, 또는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전형적인 편협한 신학과 그에 어울리는 교회음악과 함께 근본주의 공동체에서 자랐습니다. 우리는 소위 성스러운 페이퍼백으로 된 찬송집에 있는 복음찬송을 불렀지만, 기쁨과 열정으로 찬송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성가대와 악기들이 있어서 시창(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것)과 악기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불렀던 코러스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종 그날의 구도자들의 간증과 경험과 연계되어, 회중들인 참회자들이 그들의 죄와 회개에 대한 촉구와 씨름하며 구식의 “통곡의 벤치(회중의 기도대)”에서 불리던 코러스였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내가 핍박 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공동체로서 우리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마이너리티 신분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었으며, “곤욕 당한다”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멸시당했는지를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느 정도는 어떤 금욕주의자도 갈망하지 않을 “세상과 육체의 죄”를 피해야 했는데, 여러 금지법 중에서 주일에는 지역 고교 운동경기에 참석하는 것까지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통상적인 예배의 표현을 높이 평가하신다고 생각하거나, 더 나은 예배의 표현을 위한 여지가 없다고 추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베토벤의 소나타와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을 배웠던 것은 이런 지역 사회에서 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교회의 예배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전통적인 형식의 음악과 일반적인 찬송가를 강조하는 선택이 점점 더 적은 회중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문화는 가치라는 것은 인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전통주의자들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종종 조롱을 받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성령은 현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현대적인 찬송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하는 현대식 찬양과 경배(예를 들면 힐송 예배 찬양)에 대하여, 그들(전통주의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경고받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반 문화(counter culture,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여전히 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그 길을 선택할 교회들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일부 독자들이 그런 교회들의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음악을 맡은 목회자들은 그래야 합니다. “주님의 멸시당하는 소수”라는 구절에 나타난 그릇된 경건함이 아니라, 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해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과 배려는 오늘날의 상업과 대중 문화에 대한 전적인 전념과 헌신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에 기초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도자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적 이유가 아니고, 복음의 진리를 위하여 그러한 결정을 격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헌신은 하나님의 총체적인 계시는 현대의 팝문화의 일시적이고 비반성적인 방식으로는 전달되거나 소통될 수 없다는 암묵적인 합의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우리는 곧 범세계적인 교회의 전면적인 부흥을 목격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총체적인 예배가 어느 교회에서나 행해질 수 있으며,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러한 예배가 믿는 자 개개인의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증명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진정한 갱신이 시작됩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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