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화만 받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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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화는 수신자 부담으로 ‘삐이 삐~~~’로 부터 온 전화입니다. 이 전화를 받으시려면 1번을 누르시고, 받기를 원치 않으면 2번을 누르십시오.” 텍사스에서 사역할 때, 교회 사무실로 걸려 온 전화에서는 차가운 기계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광고 전화도 안 받는데, 기계음으로 걸려 오는 전화를, 그것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오는 컬렉트콜을 받을 리가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삐이 삐~~~’ 라는 신호음에 이어 ‘여보세요’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한국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순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 사는 한국 사람이 수신자 부담으로 교회에 전화를 걸 정도면 분명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전화를 받기 위해 1번을 누르려는 순간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그 후로 그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여보세요’라는 음성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컬렉트콜로 전화를 건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몇 주 후에 나왔습니다.
동네에서 세탁소를 하시는 한국 분이 제게 연락을 주셔서 교회로 가야 할 편지가 자신의 가게로 잘못 온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대로 수신자는 교회로 되어 있는데, 주소는 그 동네의 큰길 이름밖에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친절한 우체부가 한국 교회로 가는 편지인 줄 알아보고는 한국 분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편지를 전달했고, 그 편지가 저한테까지 왔습니다.
귀퉁이는 찢긴 채 이리저리 구겨진 겉봉투는 한 달 이상 배달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맨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편지의 발신지는 교회 인근에 있는 ‘구치소(Detention Facility)’였습니다.
편지에는 수감자의 신분으로 구치소에 있는 어떤 한국 분이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삐뚤빼뚤한 글씨는 이 편지를 쓴 분이 지나온 삶의 여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엉성한 맞춤법으로 쓴 편지에는 거친 삶을 살아온 이가 내뿜는 가쁜 숨소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편지는 교도관의 도움으로 인근에 있는 한국 교회 이름을 받아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목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정중한 인사로 시작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의 구치소에 갇힌 이의 두려움이 짧은 편지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얼마나 억울한지를 말하는 대신 두렵고 외로운 마음을 달랠 한글로 된 성경책 한 권만 구치소 주소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당장 서점에 가서 큼지막한 성경책을 하나 샀습니다. 세면도구와 간식거리까지 넣은 선물 상자를 만들어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내면 그에게까지 전달되리라는 순진한 기대는 몇 주 만에 돌아온 선물 상자와 함께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돌아온 선물 상자에는 구치소에는 외부 물건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딱딱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성경을 포함한 어떤 책도 구치소에서 지정한 서점을 통해서만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치소에 면회라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면회 신청서를 내고 신원 조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때쯤이었습니다. 지역 신문 한 귀퉁이에 구치소에 수감된 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났습니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 신문을 왜 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신문을 보는 순간 기사에 난 그분이 컬렉트콜로 전화했고, 편지로 도움을 청했던 바로 그분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제가 그 전화만 받았더라면 그분의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 쪽에 경험이 있어서 성경책을 잘 전달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후회도 남아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도움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구치소나 교도소에 있지 않더라도, 이민 생활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계신 분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어제는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생명의전화 창립 24주년 기념 감사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전문 상담 봉사자들의 수고와 돕는 이들의 후원이 어우러져 이민 생활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전화만 받았더라면….’ 그런 후회가 일지 않도록 더 많은 봉사자와 후원의 손길이 넘치기를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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