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목사의 ‘바나나’와 ‘오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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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오셨습니까?)” 낯선 곳을 방문할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기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목에는 약간 힘을 주며 말합니다. “I’m from California. (캘리포니아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대부분 거기서 그치지만, 시망스러운 사람들은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원래 어디 출신입니까?)” 그럴 때면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I’m originally from Hawaii. (저는 원래 하와이 출신입니다.)”
저는 하와이에서 살다가 캘리포니아로 왔기에 원래 하와이 출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저의 피부색을 보고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왔을 것이라는 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고개를 돌립니다.
"어디서 왔냐?"는 말이 낯선 이에게 다가서기 위해 던지는 가벼운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너는 누가 봐도 미국인이 아니잖아, 너는 어디서 왔냐고, 원래 어디 출신이냐고?’라는 인종적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인종 차별적 질문과 대우는 "영어 참 잘하네요?"라는 비아냥으로 발전해서 영어를 잘하면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환영받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이방인으로 받는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나누면 "그럼 너희 나라로 돌아가면 될 것 아니냐?"라는 말과 함께 노골적 배타성을 드러내어, 가뜩이나 움츠린 ‘주변인(Marginality)’의 기를 꺾습니다.
그런 수모 정도는 남의 땅에 와서 사는 대가로 여기며 사회 구조에 순응하면서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모범적 소수 인종(Model Minority)’이라는 환상을 전파하지만, 이는 다른 소수 인종들이 차별적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했음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신화일 뿐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이민자’들에 대한 의도적 핍박입니다. 이민자들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 미국 사회에서 돈을 벌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이기주의자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미국 사회가 겪는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떠넘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정치권에서는 이 바이러스를 중국에서 시작되어 중국인이 옮겼다는 뜻을 담아 ‘쿵 바이러스(Kung Virus)’라고 불렀고, 이에 따라 ‘아시안 증오 범죄’가 급증했습니다.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만이 아니라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는 절박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백인 경찰이 짓누르는 무릎에 목을 졸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인종 차별이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에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 참석한 한 회의에서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에 대해서 연합감리교인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세미나 후에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자기 경험과 우리가 처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한국계 미국인 세 사람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두 사람이 소그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모두에게는 유색 인종으로 살면서 경험했던 아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한 분이 같은 아시안이지만 1세와 2세가 다르다고 하면서 ‘바나나’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바나나’는 겉으론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과 가치관은 이미 백인이 되어버린 한인 2세와 3세를 말합니다. ‘바나나’라는 말이 나오자 두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크게 웃으면서 자신들은 그런 사람들을 ‘오레오(Oreo)’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모두가 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오레오는 미국에서 만드는 과자로 검은색 비스킷 사이에 하얀 바닐라 크림이 들어있는 과자입니다. 오레오는 미국의 주류 사회와 문화를 지향하고 제도권에서 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비하해서 부르는 속어입니다.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녀가 살아야 할 세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 시대의 ‘바나나’와 ‘오레오’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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