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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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남가주에는 자랑할 것이 참 많습니다. 일 년 내내 맑고 온화한 날씨, 태평양을 끼고 늘어선 아름다운 해변들, 겨울이면 하얀 눈 모자를 쓴 산이 가까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국립공원도 여럿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테마 공원도 즐비합니다.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웃이 될 수 있는 곳도 남가주입니다. 프리웨이와 잘 정비된 도로망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랑거리입니다. 풍부한 먹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의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사회구조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활기차게 만듭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는 남가주이지만,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슬며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이 대중문화를 이끌고, 각종 프로 스포츠팀이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여가를 책임지지만, 유럽의 오랜 역사가 빚은 문화적 유산이나 미 동부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나 박물관, 수준 높은 공연 예술 공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남가주의 문화적 자존심을 세워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게티 센터(Getty Center)’와 ‘게티 빌라(Getty Villa)’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게티 센터’가 현대적 건축물에 담긴 유럽의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된 이탈리아의 해안 도시 허큘라네움에 있던 고저택 ‘빌라 데이 파피리(Villa Dei Papiri)’를 재현한 ‘게티 빌라’는 방문객들을 2,000년 전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 안내합니다.
우리 교회의 80세 이상이신 교우들로 구성된 선교회인 ‘에녹회’에서 ‘게티 빌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목요일 아침, 에녹회 회원들은 학창 시절 소풍 갈 때 느끼던 설렘을 안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에녹회 회장으로 수고하시는 박미수 목사님께서 준비하신 간식을 받아 교회 버스에 올랐습니다. 산타모니카 해변을 지나자 곧 ‘게티 빌라’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른 아침까지 쏟아지는 통에 봄나들이를 기다리던 이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지만, 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히려 더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부드러운 바닷바람에 나무와 풀과 꽃들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게티 빌라’와 ‘게티 센터'는 ‘폴 게티(Paul Getty)’라는 사람이 자신이 평생 모은 예술 작품과 그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폴 게티’는 미국의 석유 재벌로 1950년대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였지만, 구두쇠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구입한 저택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자기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화기에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집 안에 공중전화기를 설치했습니다. 1973년에 폴 게티의 손자가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해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받았지만, 그들과 협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일화입니다.
폴 게티는 그토록 지독한 구두쇠였지만, 자신이 평생 모은 예술품과 재산으로 게티 재단을 설립하고 대중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폴 게티는 자신이 평생 꿈꾸었던 ‘게티 빌라’가 완공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름다운 건축물과 많은 예술품, 잘 가꿔진 정원을 사회에 기증하므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 것은 물론, 남가주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게티 빌라’ 안에 있는 야외 패티오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누렸습니다. 도심에서 30분만 벗어나면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봄나들이에 참석하신 분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일상의 틀에 갇혀 지내다 야외로 나오는 것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누린 은혜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교회에서 준비한 큼지막한 선물로 이날 봄나들이가 멋지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봄나들이에 함께하신 에녹회 회원들과 세심하게 준비해 주신 에녹회 회장님과 임원들, 그리고 교회 버스를 운전해 주시고, 도우미로, 사진사로 섬겨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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