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해체하는 힘과 연합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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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고전적인 법학자 칼 레벤슈타인(Karl Loewenstein, 1891-1973)은 인간을 움직이는 세 가지 기본적인 충동을 “사랑, 신앙과 권력”(love, faith, power)이라고 보았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주장입니다. 이 세 가지는 공동체를 연합하고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이나 씨족, 신앙 없는 교회, 그리고 권력 없는 정당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인간 공동체 속에는 그러나 사람을 연합시키고 발전시키는 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는 인간을 분열시키고 해체하는 힘이 있습니다. 요컨대 죄는 ‘해체하는 힘’입니다. 죄는 미움과 질투, 그리고 탐욕과 같은 마음의 타락상에서 시작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욕심은 죄의 열매를 맺고, 죄는 인간의 분리를 가져오는데, 이를 우리는 '사망'이라고 합니다. 사망이란 나누이는 것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요,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입니다.
바야흐로 포스트모던 시대는 해체(deconstruction)의 시대입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부부관계가 해체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해체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망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의보다 승리가 중요한 시대를 우리가 통과하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미디어는 진영논리에 붙들렸으며, 정치적 분화와 갈등이 횡행하며,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간의 대화와 토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열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1983년 템플턴상 수상식에서 솔제니친이 말한 바에 의하면 소련 공산주의의 모든 공포가 발생한 원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구의 배교, 가족 해체, 공동 목표의 상실, 변태 성욕, 생명의 존엄에 대한 거부는 바로 나라와 사회의 영적 공통분모의 상실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나누인 세상에서 성탄의 예수님은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주님은 바로 믿음을 상실한 마구간인 우리의 마음에 오셔야 합니다.
이 시대에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집니까? 첫째로 우리는 연합의 공통분모인 예수님을 영원, 무궁하신 왕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밖에 다른 왕이 없다” 고백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왕권과 그의 나라의 절대성은 다른 모든 정권과 이데올로기를 상대적(relative)이고 잠정적(temporal)인 것으로 만듭니다. 여기에 평화의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각 진영의 날 선 싸움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의 사명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적과 아군을 갈라칩니다. 그것은 싸움을 위하여 역사를 조작하고 유리한 자료만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평화의 소식이며 연합의 능력입니다.
셋째로 예수의 복음은 연합과 화해를 확산시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고, 편견을 가진 유대인이나 이방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유자나 종을 사랑으로 연합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평강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과 화해가 선포된 날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재단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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