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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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표정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손짓과 몸짓으로 감정을 나타냅니다. 화장도 하고, 머리도 손질하고, 옷매무새도 다듬으며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이런 모습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우리의 앞모습입니다. 잔잔한 미소나 호탕한 웃음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나 슬픔의 눈물자국도 모두 앞모습에 담겨 있습니다.
앞모습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면, 뒷모습은 들키는 것입니다. 앞에서야 얼마든지 미소도 짓고 괜찮은 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구부러진 등과 축 처진 어깨가 드러내는 뒷모습에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깨끗이 세수를 하고 / 거울을 들여다본다 / 단정한 내 앞모습이 거기 있다 /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 거울 속에 보이지 않는 / 내 뒷모습이다 / 외로울 때 / 나의 뒤에서 뒷심이 되어주던 / 뒷모습 / 거기 혼자 있는 뒷모습이 보고 싶다 / 거울을 볼 때마다”
권영상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이 거울을 통해 볼 수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뒷모습을 보고 싶다고 노래한 것처럼, 뒷모습은 분명 자신의 일부분임에도 스스로는 만지지도 확인할 수도 없는 가장 가깝고도 먼 나의 모습입니다.
뒷모습에는 내가 잘 아는 내가 아니라 낯선 내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나마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정직한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뒷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면 앞모습으로 가릴 수 없는 진짜 나의 모습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시작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아버지의 뒷모습에 담긴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정을 느끼며 자식들은 어른이 됩니다. 앓는 자녀를 위해 밤새 머리맡을 지키다 잠시 눈을 붙인 어머니의 뒷모습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부부는 서로의 등을 보며 실망도 하지만 그 뒷모습에서 연민을 발견하면서 부부의 사랑을 이어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믿음이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때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뒷모습에는 우리를 업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반석 틈에서 손으로 모세를 가린 채 하나님의 뒷모습만 살짝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뒷모습에는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뒷모습만 카메라에 담는 사진작가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에두아르 부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구부정한 등을 보이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 속에 담긴 쓸쓸함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허공을 응시하는 뒷모습에는 고민에 빠진 인생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뒷모습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뒷모습은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에두아르 부바는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뒷모습은 어색한 웃음도, 마음을 숨기려는 서먹한 표정도, 애써 감추려는 머쓱한 손짓도 지을 줄 모릅니다. 그저 지금까지 지고 왔던 삶의 무게로 뻐근해진 등짝을 보여줄 뿐입니다.
사람의 뒷모습만 거짓말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세월의 뒷모습도 거짓말을 모릅니다. 앞에서 다가오는 내일은 갖은 아양을 떨면서, 때로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손짓합니다.
우리는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며 오늘을 살지만, 거짓말을 모르는 세월의 뒷모습에는 우리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살아온 삶의 흔적도 녹아있습니다. 세월의 뒷모습에는 잘한 것도 드러나지만 부족했던 것도 감춰지지 않습니다. 후회를 남기기도 하고 보람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세월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철이 드는 것입니다. 올 한 해가 뒷모습을 남기며 또 이렇게 줄행랑치고 있습니다. 그 세월의 뒷모습에는 아쉬움만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도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새로운 날이 다가옴을 알기 때문입니다.
2022년이라는 세월의 뒷모습이 남기는 은혜에 감사하고, 하루하루의 소중한 흔적을 쌓아 아름다운 세월의 뒷모습을 만들어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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