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인간의 존엄과 하나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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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삶을 고난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고난의 바다를 지나는 우리 삶은 현상적으로 볼 때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출생하여,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삶이 우리가 지나는 길입니다. 고난의 감옥에서 탈출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구 위의 삶을 ‘감옥 행성의 삶’ 혹은 ‘고난 행성의 삶’이라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고해에서 수영하다가 죽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까? 그러나 인생에는 뜻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말하기 이전에,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규정했고, 유약한 인간이 물 한 방울로도 죽어가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성찰하는 종교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감옥 행성의 삶이 아니라 “교육 행성”에서의 삶입니다. 깨달음과 구원으로 나가는 삶입니다. 자신의 존엄을 발견하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의 의미입니다.
예일(Yale University)의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르프(Nicholas Wolterstorff)는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는 문서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기초가 되는 문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엔 인권선언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 문서 없이 주장합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진화론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물론과 무신론과 인본주의의 가르침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의 중요한 기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의 첫 장, 창세기 1장 26-28절에서는 인간이 삼위 하나님의 계획으로 창조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들자”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창세기 9장 6절에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피를 흘려서는 아니된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닮은 꼴로 창조된 인간이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 존재를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의 현현’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형상, “첼렘”이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시적으로 보이게 하는 실체를 의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상”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데, 왕은 자신의 형상을 지방에 세웁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방법으로 형상, 곧 우상을 만듭니다. 혹은 신의 형상을 만들어 종교적인 섬김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동상, 석상, 혹은 목상을 만들어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대상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존귀하게 만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사건입니다. 놀랍게도 신약 성경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고후 4:4; 골 1:15)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라고 소개합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완벽한 형상입니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인간을 영원한 하나님의 권속으로 포섭하여 신성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방불한 존재로 인간을 지으셨고, 죄로 깨어진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이 됨에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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