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3. 교사 홋타 아야코의 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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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로 지운 교과서 앞에서 시작된 『빙점』의 영혼
한 사람의 회심은 때로 찬란한 빛으로 오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먹물처럼 옵니다. 검은 먹물이 종이 위에 번지듯, 한 인간의 과거와 신념과 자부심 위에 번져옵니다. 그리고 그때 사람은 묻게 됩니다. “내가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가르친 것은 진리였는가?”
미우라 아야코, 결혼 전 이름 홋타 아야코는 처음부터 기독교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의 딸이었고, 천황제 교육의 교사였으며, 전쟁을 “성전”이라고 믿은 젊은 지성인이었습니다. 1922년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난 그는 1939년,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여섯 살의 나이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중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태평양전쟁이 다가오던 시대였습니다. 어린 교사 홋타 아야코는 아무 의심 없이 학생들에게 나라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일본인으로서 훌륭한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거운 질문 앞에 섭니다. 선량한 사람이 어떻게 악한 체제의 입이 될 수 있는가? 성실한 교사가 어떻게 죽음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칠 수 있는가? 홋타 아야코는 악마적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실했습니다. 국가가 말하는 것을 믿었고, 학교가 요구하는 것을 가르쳤으며, 시대가 칭찬하는 사람이 되려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죄의 무서움이 있습니다. 죄는 언제나 추악한 얼굴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 죄는 충성의 얼굴로, 애국의 언어로, 교육의 이름으로 옵니다.
1945년 8월,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전쟁을 신성하다고 믿었던 언어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연합국 점령 아래 문부성의 지령에 따라 교과서 속 군국주의 문장을 먹물로 지워야 했습니다. 어제까지 소중히 다루라고 가르친 교과서에, 오늘은 먹물을 칠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교육 행정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대의 신념에 대한 장례식이었고, 홋타 아야코에게는 자기 인생에 먹물을 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먹물은 글자만 지우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말한 진리의 허상을 지웠고, 젊은 교사의 청춘 위에 내려앉은 거짓의 표면을 지웠습니다. 그러나 먹물은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아야코는 “나는 7년간 도대체 무엇에 그토록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었는가?”라고 묻게 됩니다. 그는 시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이들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 만드는 교육에 참여했다는 죄책 앞에 섰습니다.
『빙점』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소설은 남의 죄를 묻는 작품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묻는 작품입니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죄를 보고, 나쓰에는 요코의 출생을 보며, 요코는 자기 안에 흐른다고 믿게 된 죄의 피를 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질문 뒤에는 작가 미우라 아야코 자신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죄 없는 사람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죽음을 가르친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복음주의 신앙에서 죄는 단순한 실수나 심리적 상처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왜곡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대신 우상을 섬기는 상태입니다. 홋타 아야코에게 그 우상은 국가와 천황과 시대정신이었습니다. 패전은 그녀에게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가짜 절대자의 붕괴였습니다. 그러나 그 허무는 은혜의 예비 장소가 되었습니다. 자기 의가 무너질 때 비로소 은혜를 구하고, 자기 무죄의 환상이 깨질 때 비로소 십자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홋타 아야코의 손은 교과서에 먹물을 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을 훗날 복음의 문장을 쓰는 손으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죄책이 끝이 아니라 부르심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허무가 끝이 아니라 참된 길을 찾는 문턱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먹물이 끝이 아니라 흰 눈 같은 용서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은혜의 펜끝에서 『빙점』이 태어났습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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