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를 향한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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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5일(수) 저녁에 설립 20년 주년을 맞이한 미주 성시화운동본부가 감사예배를 드리는 나성순복음교회를 찾아 격려사를 하였습니다. 대표회장인 송정명 목사님과 진유철 목사님, 여러 운영위원과 이사님들, 그리고 자문위원과 함께 성시화운동의 의미를 즐거이 되새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거룩한 도성, 성시(聖市, Holy City)에 대한 비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편 48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도성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있는 것을 도시의 영적 모형으로 제시합니다. 이 과거의 예루살렘은 미래의 새예루살렘으로 이어지며 우리에게 지속적인 비전으로 남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피할 수 없이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회성(sociality)을 닮은 때문입니다.
이 ‘창조된 사회성’(created sociality)은 에덴에서 타락한 이후에도 에덴의 동쪽에서 에녹성을 건설한 가인의 후예 속에서도 나타나고, 홍수 이후에도 바벨론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아테네와 고린도, 콘스탄티노플과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형성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사회적 인간이 모여 사는 도시 속에는 심미적인 특성, 문화적 특성,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특성이 나타납니다. 저녁노을이 질 때, 친구들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광장 아래에서 밤의 고도(古都)를 올려볼 때의 생생한 느낌은 도시가 가진, 미학적 측면,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측면을 온몸에 쏟아붓는 것 같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 터툴리안은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했습니다. 저는 터툴리안이 핍박을 받는 교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에 몰입하여, 이미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계속될 도시에 대한 사명을 잠시 회피했다 생각합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가는 복음 전파의 확신은 도시와 공동체를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그 복음의 미래에는 안디옥과 에베소와 서머나와 필라델피아가 있었으며, 결국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와 스페인의 도시와 콘스탄티노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함께 아테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비전이 성시화운동의 거룩한 비전입니다. 캘빈과 동역자들의 제네바 성시화운동, 낙스와 동역자들의 세인 앤드류스와 에든버러 성시화 운동, 그리고 미국에 이민한 청교도들이 미국을 ‘언덕 위의 도시’로 가꾸려 했던 비전이 역사 속에 반복적으로 실천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도 도시의 이름을 짓던 신앙인들의 소명과 갈망이 도시의 명칭 속에 살아있습니다.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와 새크라멘토 등에는 거룩한 도시를 향한 성인, 천사들과 성례식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교나 구교나 하나님의 도시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소명감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황폐한 세속도시로 남아있는 예루살렘을 성도들이 소망하며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느 도시든지 도시는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법학자 자끄 엘륄이 “도시의 의미”라는 책에서 본 것이 바로 이것 도시의 영성입니다. 세속적인 영성, 폭력과 압제적 영성,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향하는 거룩한 영성이 바로 도시를 구별하는 영성입니다. 성시화 운동의 도시의 영성을 거룩하게 하려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새예루살렘을 향한 소망입니다. 교회의 성역을 흘러넘치는 영성이 도시의 정치, 문화, 사회, 제도, 예술과 종교를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아름다운 비전이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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