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 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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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 마을에는 무장 공비와 경찰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낮에는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지만, 밤이 되면 무장 공비들이 마을의 지배자로 등장했습니다. 깊은 밤 누군가가 집에 들어와서 집주인에게 “당신은 누구 편이냐?”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은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잠에서 깬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잠결에 일어난 사람은 불빛 너머에서 질문하는 사람이 무장 공비인지 아니면 경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대답을 잘못하면 무자비한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이청준이 쓴 ‘소문의 벽’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라는 힌트를 줍니다. 진실이 대답하는 이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진실을 말한다면 최소한 거짓말을 하고 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누구 편이냐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묻는 사람마다 모두 같은 편이 되어 주길 원합니다. 정치적으로 같은 노선에 서기를 원하고, 신앙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같은 색을 좋아하고, 같은 음식을 선호하고, 같은 취미를 갖기를 원합니다.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은 편을 가르고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메릴 스트립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피는 고국 폴란드에서 나치에게 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전쟁과 학살, 고통과 죽음이 가득한 수용소에서 만난 군의관이 소피에게 선심을 쓰듯 말합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 아마, 그분은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피에게 군의관은 선택을 강요합니다. “하나만 데리고 있어.” 이 끔찍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기 싫었던 소피가 되물었습니다. “뭐라고요?” 군의관은 소피의 두 아이 중 그녀가 선택한 한 아이만을 살려 주겠다고 소리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엄마에게 한 아이를 죽이는 선택을 하라는 잔인한 말이었습니다.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그럴 수는 없어요! 선택할 수 없어요!” 아들과 딸 중 하나만을 살릴 수 있다는 선택 앞에 소피는 절규하지만, ‘그럼 둘 다 죽어!’라는 군의관의 말에 이성적 판단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라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얼떨결에 아들의 손을 잡은 소피에게는 아들을 살렸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냐고 질문하면서 우리에게 ‘그럼,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 편인가?’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세상의 질문은 우리 앞에 놓인 작은 차이를 점점 벌리더니 결국은 서로를 갈라놓습니다.
성경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이 해야 했던 어려운 선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말년에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했던 인구조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구 조사에 대한 징계로 다윗에게 7년 기근이나 석 달의 전쟁, 아니면 사흘의 전염병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선택할 수 없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다윗은 사흘의 전염병을 택했고, 그 때문에 칠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성경은 왜 다윗이 이 재앙을 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벌을 받겠다고 하면서 이 재앙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긍휼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기도 하시지만, 그 재앙을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멈추셨습니다.
살면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일하십니다. 세상은 선택을 강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배를 통해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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