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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으면 존경스럽고, 삶에서 향기가 느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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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3-07-24 | 조회조회수 : 2,9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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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80년대 말, 저는 강원도에 있는 한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부대를 둘러보러 온다고 했습니다. 부대는 지휘관 맞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청소하고, 페인트를 칠하고, 잡초를 뽑고 화단 정리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지휘관의 방문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숙소와 식당, 세면장 주변에 재떨이를 설치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병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큼지막한 통조림 깡통을 구해 모래를 담아 재떨이를 만들어 세워 두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부대 내에서 통조림 깡통을 구할 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대는 안 된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불가능’이라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병사에게 2시간 내로 깡통을 주워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병사들은 부대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부대에 갓 들어온 졸병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대 내에서 깡통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참들이 하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름대로 창의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다른 부대원들이 깡통을 주워 오면 뚜껑을 따야지 재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깡통을 주으러 다닐 동안 저는 깡통 따개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뒤져도 보고, 취사병들에게 부탁도 했지만, 누구 하나 저 같은 졸병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깡통도 줍지 못했고, 깡통 따개도 구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면 모두가 저처럼 빈손으로 돌아왔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무반에 들어서는데 다른 부대원들이 구해온 깡통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재떨이로 쓸 만큼 큰 깡통도 있었고, 성의라도 보이기 위해 가져온 작은 깡통이 빈손으로 들어오는 저를 무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 다른 데서 놀다 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고참들의 얼차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야단치는 소리를 듣는데, 고참 중의 한 사람이 뭐 하다 왔냐고 점잖게 물었습니다. 저는 깡통 따개가 필요할 것 같아서 구하려고 했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칫하면 깡통을 구하러 다지지도 않은 주제에 핑계까지 대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 더 큰 수난을 당할 위기였습니다. 그때 제 답에 귀를 기울이던 그 고참 병사가 기특한 생각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하라면 해야 하고,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말이 통한다고 느꼈습니다. 아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그때 제 마음을 알아주었던 그 선배 병사의 이름을 신문에서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언론사 기자를 거쳐 정보통신업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더니, 이제는 인공지능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챗(Chat)-GPT’로부터 시작된 ‘AI(인공지능)’에 대한 높아진 관심 덕분에 기업과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프로그램 코딩 작업은 3년 차 엔지니어 수준으로 할 수 있고, 판결문이나 각종 기사 작성은 물론 그림도 그리고 동영상도 만들고 시도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 이제 종교계마저도 위협하고 있는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야 하냐고 묻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같이 있으면 존경스럽고, 삶에서 향기가 느껴진다면 챗-GPT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챗-GPT를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이 내는 향기를 컴퓨터에서 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30여 년 전, 군대 시절부터 같이 있으면 존경스럽고 삶에서 향기를 내던 사람다운 말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우리의 길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같이 있으면 존경스러운 사람, 삶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신앙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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