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물맷돌] 츠다카의 하나님, 츠아카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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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다카”라는 히브리어는 성경에 수백 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공의” 혹은 “정의”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실 때, 우리는 이 츠다카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쌍이 되어 등장하는 단어가 “미슈파트”입니다. 이 단어는 “샤파트” ‘심판하다’라는 단어의 파생어로서 실정법적인 재판의 정의를 말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미슈파트라는 단어는 다분히 법정적인 정의가 실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츠다카와 미슈파트가 이처럼 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이 정의와 공평이라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의로운 나라 세우길 원했습니다. 부르짖음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서, 풍요와 평안을 구가하는 나라를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은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비전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전파됩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이루려는 나라가 열방과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공의(츠다카)와 실정법적 재판을 통해 이루는 정의(미슈파트)의 나라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정의 “츠다카”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하나님께서는 “츠다카”의 정의가 아니라, “츠아카”라는 부르짖음이 충만한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츠아카)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창 18:20). 정의 곧 츠다카의 하나님은 츠아카 곧 부르짖음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참상을 지적하시고,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창세기의 말씀은 이사야에 의하여 다시 반복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유다왕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나타남입니다. 그 하나님의 도성에서 공의가 시행되어야 할 터인데, 백성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니, 이스라엘은 안타깝게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사 1:10)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세게 질타하십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사 5:7)이었다 거론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 가운데서 교묘한 언어의 유희를 사용하십니다. 너희에게 “미슈파트” 곧 정의를 바랐으나, 도리어 “미슈파흐” 곧 포학이요, “츠다카” 곧 공의를 바랐으나 도리어 “츠아카” 곧 부르짖음이었다고 유대인에게 도전하십니다. 유대인이 하나님께서 떠나자, 츠다카와 미슈파트의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인간 세상이 부르짖음과 포학, 곧 “츠아카와 미슈파흐”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하는 직전 상황의 특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의 위대한 성취로 부와 건물과 군사력과 문화적 능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 곧 선지자 정신은 나라 안의 공평과 정의를 말합니다. 츠다카가 아닌 츠아카, 미슈파트가 아닌 곧 미슈파흐를 살펴야 합니다. 부르짖음과 포학을 발견하고 문명을 다시 회복하는 것, 이 잣대로 나라의 현실태를 조망하여 분석함이 우리 신자의 사명입니다. 장구한 문명은 곧 하나님의 보좌를 받치는 정의에 기반을 두기 때문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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