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
페이지 정보
본문
한 해 속에서 가장 신앙적인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을 지내며, 월요일은 권위(權威)를 보이신 날로, 화요일은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인 날로, 수요일은 침묵과 기도의 날, 목요일은 성찬의 날, 금요일은 십자가에 달리신 날로, 그리고 토요일은 무덤에 묻힌 날로 보내셨습니다.
주일 아침은 부활절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것의 역사성을 흔드는 것은 신앙의 기반을 침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핵심적으로 기술합니다. 위인전이나 비망록, 전기(傳記)나 자서전과는 달리, 복음서는 예수님의 활동과 기적, 가르침으로 집중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복음서”(Gospel)라는 독특한 형식의 글은 네 권의 책으로 신약의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오류가 없는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으로 여긴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예수”(historical Jesus)와 “믿음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8세기가 되어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기적과 치유, 신비적 사건으로 가득 찬 복음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비평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헤르만 라이마루스(1694-1768)를 필두로 비평학자들은 복음서를 “조작된 문서”로, 혹은 사실이 아닌 “신화”로, 그리고 예수를 “윤리적 교사”로 간주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들을 정리한 철학자, 신학자이며, 의사 선교사가 된 알버트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연구』(1906)라는 저술로 그 이전의 모든 비판적 연구를 집대성하고, 예수를 그 시대의 인물로서 유대적 종말론에 충실한 “묵시적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이 당시 연구의 특성은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는 같지 않다는 것이며, 전자는 학자들의 표준이자 규범이며, 후자는 신자들의 관심사이지만 실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약 100년에 걸쳐서, 성경의 복음서를 역사적으로 의심스러운 “추상화”로 보는 많은 사람이 많았으며, “예수 세미나”에 참여하는 학자를 통하여 그러한 비판적 전통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사의 긍정적 공헌은 믿음의 그리스도를 역사적, 사실적 의미가 있는 인물로, 그 시대 상황과 배경 속에서 새롭게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 기독론(Christology)에 대한 경도를 “예수론”(Jesusology)이라는 새로운 각도로 채운 것입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아래로부터의 예수론으로 보충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학자들은 복음서를 “사진”(snapshots)이라고 본 사람에게 “추상화”(abstract paintings)였다고 교정하려 했으나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이에 반응하는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을 일으켰습니다.
최근의 복음주의적 학자들은 복음서가 사진도 추상화도 아니고 “초상화”(portraits)일 것이라 봅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는 하나이고 일치한다고 봅니다. 비평적 방법론을 사용하면서도, 복음서는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선포적 역사”(kerygmatic history)의 기록이라 주장합니다. 그것은 역사 자체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관한 구속적 관심과 행동을 전하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라이마루스의 고향 독일 함부르크에서 복음서를 공부하신 고 로버트 굴릭(Robert Guelich) 교수의 성서비평학 강의가 생각납니다. 그는 복음서에 관한 해석학적 전쟁사를 3가지 은유로 정리했습니다. 사진, 추상화 그리고 초상화!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현대 주석가들이 3번째 선택을 한다고, 비평학을 처음 듣고 당혹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재단부이사장)
- 이전글예수 부활 교회 부활 23.04.11
- 다음글[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회중찬송의 열쇠(4) 2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