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전인철 목사님 가시는 길에 꽃 한송이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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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금방 다시 회복되시겠지 생각하고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골수암으로 별세하셨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지니 이렇게 급히 가시다니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정신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해 아직 코로나가 다 끝나지 않은 봄 날 오렌지카운티를 지나는 길에 목사님이 경영하시는 책방에 들렸습니다. “조 목사님, 제일 좋은 걸로 합시다” 만사를 제쳐놓고 저에게 점심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냥 한국식당보다 ‘인앤아웃’ 좋아하니 거기 가자고 했지요. 실내 좌석을 폐쇄한 터라 밖에 있는 추운 패티오 의자에 앉아 목사님과 치즈버거와 프렌치 프라이스를 함께 먹은게 목사님과의 ‘최후의 만찬’이 되었군요. 그때 우리는 파란 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코로나도 지나갈 때가 올 테니 힘을 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헤어졌습니다.
내가 20여년 전 크리스천 위클리를 창간하겠다며 의논 차 LA한인타운의 데니스 식당에서 만났을 때 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때 “조 목사님이라면 잘 하실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돕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큰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에 목사님이 돕겠다는 말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마음으로 돕겠다는 뜻인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전화통화, 혹은 문자를 주고 받을 때마다 목사님 하시는 말씀은 “많이 돕지 못해 죄송합니다”였습니다. 그냥 하시는 빈말이 아니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미주내 모든 기독언론사들이 대개는 가난뱅이 살림이란 걸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책 광고를 내서라도 도와 보려고 무진 애를 써주신 목사님이셨습니다. 기독언론사들의 연합체인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세기언)가 독후감 공모 행사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는 동안 서점협회 회장님으로서 목사님은 그야말로 물심양면 조력자이셨습니다.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 도서 상품권도 듬뿍 도네이션 해 주셨습니다. 그게 사실은 목사님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인 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독언론사들의 ‘믿음직한 동지’였습니다. 책방을 경영하시면서 실비치에 있는 레저월드한인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사역하실 때는 에너지가 가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목사님은 책방에서 여러 목사님을 만나시니 동네 복덕방처럼 교계 사정을 꿰뚫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작은교회 목사님들을 만나면 늘 사랑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사셨습니다. 또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우리 신문에 협력하지 않는걸 서운해하며 어느 목사님의 험담을 늘어놓으면 금방 내 말을 막아서며 그 목사님의 입장을 설명해 주면서 내 미움의 생각을 씻어내게 하셨습니다.
목사님, 100세 건강시대에 너무 급하게 우리 곁은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그 분의 뜻이라면 순종할 수 밖에요. 이제 아픔이 없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가시는 길에 한창 피어오르는 캘리포니아 야생화 한송이 올려드립니다.

고 전인철 목사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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