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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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사역하던 교회에 여자 성도님 한 분이 새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오는데, 남편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지 늘 혼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열린 특별 행사에 그분의 남편이 아이들 비디오를 찍기 위해 커다란 비디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남편에게 몇 마디 말을 걸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아이들 때문에 교회에 억지로 들렀는데 목사가 말을 걸어오니 쑥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인이었습니다.
여자 성도님은 중국에서 유학할 때 중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 와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취직이 되면서 자연스레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때쯤 심한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돌봐줄 가족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낯설고 광활한 텍사스 땅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할 인생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더구나 남편도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낼 때였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이 의사 저 의사를 만났지만, 도무지 우울증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땅이 꺼지고, 세상이 암흑으로 변하면서도 아내로, 엄마로서 삶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공포가 되어 자신을 가두고 있었습니다.
나날이 야위어가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였습니다. 이번에도 안 되면 더는 희망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아 속 시원한 상담도 받기 어려웠지만, 이번에 만난 의사는 명의 중의 명의였습니다. 기막힌 처방전 하나로 단번에 그분을 고쳤습니다.
그 처방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Go to Korean Church. (한인 교회로 가시오)” 의사는 친절하게도 전화번호부를 찾아서 근처에 있는 한인 교회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어서 처방전을 완성했습니다.
그분은 의사의 처방대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인 교회를 찾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마음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도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났을 때는 이미 몇 년을 그렇게 지낸 후라 그런지 아팠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저 오묘하다는 말밖에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의사로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상한 처방전을 쓰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교회 다니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말도 안 되는 기막힌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어릴 때 선물 받으려고 교회 나왔든, 누구 만나러 갔다가 발목이 잡혔든, 미국 와서 한국 사람이 그립고,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든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 기막힌 이야기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교회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는 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처음부터 굳은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기막힌 방법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예배 후에 점심 친교 자리에서 새 가족 몇 분과 대화할 때였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는가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절박함 속에서 용기를 내어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는 분도 계셨고, 딸이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우연히 들렸다가 계속 나오시게 되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타주에서 이사 와서 아는 사람을 좇아 오신 분도 계셨고, 오래전 어떤 모임에서 본 얼굴이 떠올라 우리 교회를 찾아오셨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이 동네에 7~8년 살면서 교회 앞을 수없이 지나다녔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교회 간판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와 그다음 주부터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막힌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끄실 것이라는 기대와 감격으로 오늘을 살아갑시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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