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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는 추억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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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3-04-18 | 조회조회수 : 2,2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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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우회전, 저 앞에 있는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세요. 그 길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좌회전하시면 됩니다.” 지난주에 방문한 하와이에서 저는 졸지에 가이드 노릇을 했습니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은 채 하와이에 살았다는 저를 믿고 핸들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길에 들어서자 마치 엊그제 다닌 길처럼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하와이에서는 길만 여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진녹색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한껏 펼친 나무도 여전했고, 때를 가리지 않고 피는 꽃도 여전했습니다. 널 푸른 바다도 여전했고, 가파른 산을 타고 부는 바람도 여전했습니다. 무섭게 비를 쏟다가 맑게 개는 변덕스러운 날씨도 여전했고,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도 여전했습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면서 방문객을 맞는 훈훈한 바람도 여전했고, 오가는 손님들이 성가실 텐데도 웃음으로 환영하고 섬기는 교우들과 사역자들의 너그러운 마음도 여전했습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와이에서 열린 ‘파트너 목회 협의회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파트너 목회 협의회’는 서부지역에 있는 한인연합감리교회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8년 전에 시작된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는 ‘산타마리아 베델연합감리교회’와 하와이에 있는 ‘베다니 연합감리교회’를 파트너 교회로 섬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0개 교회가 이 사역에 참여했는데, 지금은 40여 개의 교회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파트너 목회 협의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컨퍼런스를 열어 재정적 지원을 비롯한 파트너 사역을 점검하고, 예배와 세미나를 통해 영적으로 힘을 얻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난해에도 하와이에서 모였는데, 올해도 다시 한번 더 하와이를 찾게 되었습니다. 올해 120주년을 맞는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교단의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목회 사역에 전념하는 사역자들과 사모님들을 위로하고 섬기겠다고 초청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교우들과 사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돌아오면서 마치 고향 집에 다녀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30년 전, 유학생으로 하와이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목회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감리교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는 하와이가 미국의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하와이에는 가는 곳마다 추억이 묻혀 있었습니다. 유학생 몇 명과 함께 모여 살았던 아파트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자동차가 고장 나서 애 먹었던 거리도 그대로였습니다. LA에 오기 전 3년 동안 사역할 때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며, 자주 지나던 길도 여전했습니다. 자주 가던 식당에는 추억의 맛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 함께 웃고 나누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정성으로 손님을 맞아 주시는 하와이 사람들의 인심도 여전했습니다.


‘고향에는 추억이 묻혀 있다.’ 하와이를 떠나면서 제 마음속에 든 생각이었습니다. 묻혀 있다는 표현을 쓴 까닭이 있습니다. 좋은 추억은 겨우내 김장독에 묻힌 김치처럼 오랫동안 묻혀 있을수록 좋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와이에 살면서 꼭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안 좋은 추억도 있었고, 잊고 싶은 기억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그 추억마저 아련히 사그라들어 버렸습니다. 


고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도전이 생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는 추억을 만드는 자리라는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세월과 함께 묻힐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이 좋은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는 추억을 묻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만나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추억을 만드는 주인공들입니다. 믿음으로 넘어서는 고난이라는 현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간증과 함께 신앙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자리는 다가올 고향입니다. 오랜 세월을 보내고 돌아볼 때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곳입니다. 긴 시간이 지나 세월에 묻힌 고향의 추억을 꺼낼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멋지게 살아야겠습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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