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어 고맙소!'
페이지 정보
본문
늘 화창할 것 같은 남가주의 5월이 짙은 구름을 머금은 ‘메이 그레이(May Gray)’라는 흐린 하늘로 덮여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화창하게 갠 날이었지만, 저는 교회에서 설교 준비를 한창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하신 분은 한인 타운 인근의 공원묘지에서 ‘맥클레이’ 선교사님의 묘를 찾는데 공원묘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회 사무실로 전화했다고 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맥클레이’라는 이름을 듣는데, 이 일은 제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클레이(Robert Samuel Maclay)’ 선교사님은 중국과 일본에서 선교사로 오랫동안 사역하셨고 나중에 미국에 와서는 동생과 함께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의 전신이 샌페르난도 밸리에 맥클레이 신학교를 설립하시고 학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님은 일본에서 선교하던 중, 미국의 가우처 목사에게 급히 조선을 방문할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볼티모어의 감리교회를 담임하던 가우처 목사는 기차 안에서 조선에서 온 ‘보빙사절단’을 우연히 만나 대화하던 중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확신했습니다.
가우처 목사의 부탁으로 조선을 방문한 맥클레이 선교사님은 1884년 6월 김옥균을 통해 고종의 선교 윤허를 요청했고, 7월 2일 조선에서 병원과 학교를 할 수 있다는 허락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윤허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오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디므로 조선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뒤에서 큰 역할을 한 맥클레이 선교사님이야말로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이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님의 묘를 찾는다는 분들에게 공원묘지에 언제 방문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있다가’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분들은 한국에서 오신 분들로 지금 막 LA 국제 공항에 도착했고, 다음 일행이 잠시 후 도착하면 바로 공원묘지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토요일 오후의 분주함 가운데에서도 이분들을 도와 ‘로즈데일 공원묘지(Rosedale Cemetery)’로 가서 맥클레이 선교사님의 묘를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님이 계신 묘의 위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제가 한 사람이기에 제가 꼭 가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했지만, 맥클레이 선교사님의 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로즈데일 공원묘지에 오면 또 한 분 꼭 만나고 가야 하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해리 셔먼(Harry Sherman) 선교사와 그의 아내 플로렌스 셔먼(Florence Sherman) 선교사입니다.
셔먼 선교사 부부는 1898년 2월부터 미국 감리교회 소속으로 조선에서 의료 선교를 했습니다. 조선 선교에 온 힘을 다하던 중 해리 셔먼 선교사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치료를 위해 LA에 돌아온 지 6주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해리 셔먼 선교사의 조선을 향한 사랑은 그의 부인 플로렌스 셔먼의 사역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남편을 잃은 플로렌스 셔먼 선교사는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LA에 사는 한인들을 위해 ‘한인 선교회(Korean Mission)’를 시작했습니다.
플로렌스 셔먼은 고단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유학생들의 현재 모습을 보지 않고 그들이 변화되어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힘쓸 주님의 제자로 여기며 선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이 선교회가 바로 우리 교회의 시작입니다.
셔먼 선교사님의 묘를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그래도 잘 찾아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쯤 한국에서 온 방문객을 태운 대형버스가 공원묘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선교유적연구회’라는 단체에서 가지고 온 큼지막한 꽃바구니를 맥클레이 선교사님 묘소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독교인들이 조선 선교의 문을 연 맥클레이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찾아온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찾아주어 고맙소!’
맥클레이 선교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맥클레이 선교사님, 자주 찾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 이전글[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다윗의 예배: 갱신을 위한 모델 (1) 23.05.31
- 다음글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성령 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