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다윗의 예배: 갱신을 위한 모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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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회에서의 다윗 예배
다윗 예배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축하행사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것은 신약공동체의 삶과 예배를 알리는 그의 교회와 함께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예시하는 기독론의 그림자였습니다. 시온 예배의 모습은 늘 기독교 전통 안에 명확하게 증거되어 왔는데 결국엔 소규모 가정교회의 범주를 넘는, 예배에 대한 신약기자들의 비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배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고 쓰여진 신약의 두 권의 책은 히브리서와 계시록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독자들에게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기쁨으로 모인 천만천사들”(히 12:22 번역)임을 상기시킵니다. 계시록은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드려진 우주적 경외를 묘사함에 있어 구약 예배의 비유적 이미지를 넘어 우주적으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계 4장, 5장)
중요한 시점에서 이 계시록 예배와 다윗 전통의 성막 사이의 연계가 제시됩니다. 즉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계 11:19)라고 했는데, 이 예배는 “하늘의 예배”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예배입니다.(계 21:2) 계시록의 마지막 장들은 예배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축하하는 주님과 교회와의 언약을 갱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여줍니다.
이 하나님의 도성인 새 시온성으로서의 교회의 이미지(갈 4:26)는 이스라엘 예배의 주제들과 관행들을 기독교 예배에 결합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다윗 예배의 특징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기독교 축제의 역사적 표현들 안에 보여져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혁교회들의 시편찬송, 천주교와 동방정교회 전통의 축제행진, 그리고 예배인도를 위한 유능한 음악인의 훈련 등은 기독교 예배에 나타난, 다윗의 성막으로부터 온 요소의 본보기들입니다.
그러나 다윗 예배의 회복이 구체적으로 일어난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는데 “부흥” 혹은 “복구파” 방식의 어떤 카리스마 교회들의 예배를 위한 모델로서 적용되었을 때였습니다. 이 회중들에게는 예배는 주의 “나타내시는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중심이 됩니다. 그의 백성과의 현 실제를 의식하는 것은 은혜, 혹은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의 “말씀은사”, 방언과 통역, 그리고 음악을 통해 표현됩니다. 예배순서는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절정에 이르고 연속적 찬양으로 만들어진 찬송의 시간을 포함합니다. 이 하나님의 임재의 나타나심의 순간은 예식교회의 예배에서 성찬 속의 그리스도의 실체의 교리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5. 예배갱신의 모델
“이 실제적 임재”는 많은 개신교 교단들의 예배에서는 잃어버린 요소입니다. 성경적으로 알려진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경의와 헌신의 표현이고 그의 백성가운데서 그분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듣는 사람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에 참석한 불신자같이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고전 14:25)
그러나 우리의 예배모임은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공동체 내의 인도자들이나 단체들의 발표를 그저 관람하거나 경청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 예배의 성막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의식을 회복하는 모델을 제공합니다.
많은 개신교 공동체 내에서의 현대 예배 갱신은 주의만찬(성체성사 혹은 거룩한 영교)의 구심적 역할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눅 22:19)고 하신 예수의 말씀에 응하여 더 자주 성찬예식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환영할 일인데 반하여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비정식 성찬예식의 신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천주교처럼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의 요소들 속에 임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변화”(전실체 변화)를 통해 보여진다고 이해하는, 즉 그 요소들이 표면상의 모양을 유지하는 동안에 그 떡과 포도주가 주의 실제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으로 봅니다.
복음주의 공동체에서는 주의 만찬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반응으로 예배자 각 개인의 진지한 자기성찰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는 성만찬이 헌금시간에 의식적 효과를 주는 정도의 형식적 의식절차로 낮추어지기도 합니다. <계속>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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