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늙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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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온라인으로 열리는 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동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연합감리교 한인 총회’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모임이었습니다. ‘연합감리교 한인 총회’는 수십 년 전 ‘한인연합감리교회 전국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인 교회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다음 세대와 영어 회중 사역을 하는 한인 목회자와 여성 목회자가 증가하면서, 이들과 여선교회 전국연합회를 포함해서 ‘연합감리교 한인 총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연합감리교에 속한 한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교단 분리 이슈와 팬데믹으로 ‘한인 총회’가 모이지 못하는 사이에 연합감리교에 속한 한인 공동체의 목소리를 담아낼 실질적인 구심점이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부터 ‘한인 총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공감한 5개 지역총회에 속한 한인연합감리교회 협의회 회장들과 각 지역 선교 감리사들, 코디네이터, 전국 단위의 타인종 목회자회, 여성 목회자회, 여선교회 전국연합회 대표들과 한인목회 강화협의회 위원들이 모여 한인 총회 재건을 위한 모임을 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올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시카고에서 ‘한인 총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총회를 열기로 했지만, 누군가는 총회 개최를 위해 수고를 해야 합니다. 등록받고, 호텔을 예약하고, 식사 준비며 행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위해 몇 사람이 따로 줌으로 만났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분 중에는 오랫동안 교제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낯선 얼굴도 꽤 있었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말씀 나눔으로 시작된 회의를 통해 ‘한인 총회’의 실질적인 준비를 위한 업무가 분담되었습니다. 등록은 누가 받고, 재정은 누가 담당하고, 포스터 제작과 홍보는 누가 하고, 호텔 예약과 회의장 사용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맡으라고 하면서 해야 할 일이 하나둘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은 모두 제가 오랫동안 해 왔던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은퇴하신 김광진 목사님이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섬기실 때 제가 서기로 2년간 도왔습니다. ‘한인 총회’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나서도 저는 서기로 다시 2년, 회계로 2년, 협동 총무로 또 1~2년을 섬기면서 한인 총회가 열릴 때마다 앞장서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는 저에게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이 하나하나 누군가에게 주어질 때마다 속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젊은 후배 목회자들이 적극적으로 일을 맡아 나가는 것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준비모임에 참석했는데 뭐라도 하나 맡겨지겠지’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저는 아무 일도 맡지 못한 채 회의는 끝났습니다.
사회를 보시던 목사님께서 아무 일도 맡지 못한 저를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우리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기도로 후원해 주시고…..” 그 말이 맞았습니다. 저도 이제는 실무를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습니다. 늘 젊은 목사라고 생각했는데, 어리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저도 중진을 지나 이제 원로 대열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젠 제가 할 일이 없다는 말이지요…..” 볼멘소리하는 제게 어느 목사님의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러게요. 이 목사님이 갑자기 늙으셨어요.” 그런데 그 말이 싫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일을 잘할 수 있는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갑자기 늙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늙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받아들이느라 한 주간이 힘들었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이제는 나잇값 제대로 하고, 어른 노릇 품위 있게 하며 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나잇값 제대로 못 한 채 어른 노릇을 미루다 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어른 노릇 해야 할 때가 갑자기 된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는 키나 몸무게, 나이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으로 구분되지만, 정신적/사회적으로는 참을성, 책임감, 절제가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또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아이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반면에 어른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역사 깊은 우리 교회는 그야말로 ‘어른 교회’입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와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므로 나잇값 제대로 하는 ‘어른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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