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칼 슈미트와 정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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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시간을 내어 신약학자 리처드 보쿰(Richard Bauckham)의 책, 『성경과 정치』(The Bible in Politics)를 번역하였습니다. “정치적인 안목에서 성경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보쿰과 같이 정치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신ㆍ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는 신앙적 묵상의 주요 부분 중의 하나였습니다. 구약교회의 출발은 처음부터 이집트의 왕권과 거리두기로 시작했고, 모세 5경은 유대왕국의 기초가 되었으며, 페르시아의 총독정치를 넘어, 지금의 신약시대에 교회란 국가에서 구별된 초국가적 실체로 존재합니다. 교회사에서 어거스틴, 캘빈, 루터와 청교도 신학자들도 정치적 관심을 가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치신학”이라는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이 용어를 유행시킨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라는 독일의 공법학자는 『정치신학』(1922, 34)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슈미트는 히틀러를 옹호하고 이론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와 대척점에 서 있던 신학자로 루터 교회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와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가 히틀러에 대한 비판적 책임을 감당하였습니다.
정치신학이라는 용어를 책 제목으로 삼은 칼 슈미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비효율성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제3 제국의 히틀러를 지지하며, 그의 독재정치를 비상 상태의 ‘기적’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자인하였고, 그의 주장과 논지는 법학뿐 아니라 신학과 종교적 성찰에 기반을 두려고 했습니다. 그는 많은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중에 『정치신학』에 이어 『로마 카톨릭과 정치 형태』(1925), 『정치의 개념』(1927, 1932, 1933), 『토마스 홉스의 국가론에서의 리워야단』(1938) 등의 저술을 남겼고, 자신을 비판하는 친구 페터슨에 응답하여 『정치신학 II』(1970)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다음은 그의 유명한 주장의 일부입니다. “국가에 대한 현대 이론의 온갖 중요한 개념은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들이다.” 이는 정치 철학과 신학의 연관성에 대한 지적입니다. “어떤 정치 체계도 권력을 잡으려는 노골적인 기술로는 한 세대도 버틸 수 없다. 권위 없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압제적 권력만으로는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정치적 설득과 동의가 필요한 이유를 말합니다. “정치란 가장 강렬하고도 극단적인 적대감이며... 친구와 원수를 구분하는 것에서... 가장 정치적이 된다.” 이는 정치가 친구와 원수 사이를 가르는 살벌한 권력 투쟁이라는 설명입니다. “독재란 예외 상태이다. 주권자란 예외를 결정하는 주체를 말한다.” 이는 비상사태에서, 강력한 통치자가 헌법적 테두리 밖에서 권위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히틀러를 지원하는 이 가톨릭 공법학자의 한계는 유대인 대학살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용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끝내기 위하여 슈미트는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독재를 기적이라는 말로 옹호했지만, 그는 차마 유대인 대학살을 옹호할 수 없었습니다.
약체 국가인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환멸과 강력한 국가로 등장하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지원했지만, 그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결국 파직되고 2차 대전 이후의 전범재판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슈미트의 행태를 반대하는 2세대 정치신학자가 나타났습니다. 가톨릭의 요하네스 메츠, 개신교의 위르겐 몰트만과 여성신학자 도로시 죌레는 슈미트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비판하며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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