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비치(Bruce’s Beach)’ 주인의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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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 뉴욕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면 ‘존스 비치(Jones Beach)’라는 멋진 해변이 나옵니다. 롱아일랜드 남쪽에서 대서양을 맞대고 있는 이 해변은 모래사장이 6마일 이상 펼쳐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해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다 600만 명 이상이 찾는 이 해변에서는 수영과 물놀이는 물론, 낚시, 산책, 비치 발리볼 등을 할 수 있고, 각종 야외 콘서트가 방문객을 맞습니다.
해변을 찾는 이라면 누구든지 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만, ‘존스 비치'가 주립 공원으로 문을 열던 1920년대부터 수십 년간 ‘존스 비치’는 백인들만의 공원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인종들의 출입을 제한할 법적인 근거는 없었지만, ‘존스 비치’가 백인들만의 해변이 된 이유는 이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터널 때문이었습니다.
이 터널은 의도적으로 버스나 상업용 차량이 다닐 수 없을 만큼 낮게 설계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백인들은 승용차로 해변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흑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해변에 가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제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도로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롱아일랜드에만 200개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경제력을 기준으로 차별당하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뉴욕의 ‘존스 비치’가 미 동부에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서부에는 ‘브루스 비치’가 차별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LA시 남서쪽 맨해튼 비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브루스 비치(Bruce’s Beach)’의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캘리포니아주 해변 리조트에 흑인 출입이 금지되었던 시절, 브루스 부부는 이 땅을 매입해 흑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양 시설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브루스 비치’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백인 주민들과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은 브루스 부부를 인종적으로 차별하며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시의회는 백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브루스 부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24년 이 부지를 몰수해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 땅은 LA 카운티로 소유권이 넘어가 구조요원 훈련 시설과 주차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00년 가까이 빼앗겼던 ‘브루스 비치’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시민 단체들의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고, 여론이 확산하였습니다. 결국, LA 카운티는 2022년 6월에 브루스 가문의 후손들에게 소유권을 돌려주었습니다. ‘브루스 비치’가 근 100년 만에 주인의 품에 안겼습니다. 맨해튼 비치 시에서는 ‘브루스 비치’의 역사를 기록한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인종 차별과 증오를 넘어 포용과 존중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선포했습니다.
비록 차별과 증오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그 일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2021년 새롭게 연방 공휴일로 지정된 ‘준틴스(Juneteenth)’입니다. ‘준틴스’란 달력의 6월을 뜻하는 ‘June’과 19일을 뜻하는 ‘Nineteenth’의 합성어로 1865년 6월 19일에 있었던 노예 해방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군의 고든 그랜저 장군이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도착해 전쟁 종식과 노예제 종식을 선언하므로 미국 내에서 실질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날입니다. 비록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 1865년에 끝났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분리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더디지만 세상은 변합니다. 이제 ‘존스 비치’에는 백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아름다운 해변을 즐깁니다. ‘브루스 비치’에 세워진 조형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정의와 포용 정신을 배웁니다. ‘준틴스’를 맞는 사람들은 노예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모두를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로 결단합니다.
새로 넘긴 6월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19'라는 숫자를 보면서 ‘준틴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차별과 증오를 넘어 서로를 사랑으로 품고 존중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 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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