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로봇이 세례 받겠다고 나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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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로마 교황청은 “구원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하다”며 그동안의 마리아의 공동구속자 (co-redeemer) 칭호를 불허한다고 선언했다. 나는 마리아를 두고 이런 신학적 논쟁이 가톨릭 교회에서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수백년 신학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고 했다. 교황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가톨릭 교회에서 이런 신학적 논쟁이 수백년씩이나? 놀라웠다.
금년은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삼위일체론은 이 니케아 공의회의 산물이다. 이단으로 찍혀 파문을 당한 아리우스파는 성자 예수는 성부에게 종속된 ‘유사한 본질’을 가진 ‘성부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즉 성부와 성자는 이질적이고 차별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아타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을 부정한 것이다. 한 분의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person)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삼위일체론이다.
이것은 반석 같은 우리들의 교리로 군림했고 이 교리를 부정했다가는 현대판 아리우스가 되어 파문을 감내해야 되는 역사를 거쳐왔다. 삼위일체 교리는 황제의 지위보존을 위한 콘스탄니누스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었다는 점은 인정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통해 그 교리가 오늘에 이른 것으로 믿는다.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 제2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미사를 신자중심으로 화끈하게 바꿔서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천지개벽 수준의 쇄신이었다. 현대세계와의 대화를 목표로 가톨릭 교회는 이런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오랜 동안의 또 하나의 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톨릭교회는 지금까지도 교리적 논쟁을 지속시켜 오고 있고(이게 중요하다) 그 논쟁에서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바로잡는 힘들고 위험한 영적 노고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 개신교는 어떤가?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쳐 개신교가 탄생은 했건만 그런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논쟁은 거의 사장된 것 처럼 보인다. 사실 마틴 루터를 비롯한 중세의 개혁자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마리아도 구원자인지 아니면 예수님 한 분만 구원자인지 헷갈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종교개혁 덕분에 우리는 만인제사장설도 믿고 성찬식에서 떡만 받지 않고 포도주도 받게 되었다. 목사가 결혼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탄생은 했건만 콩가루 집안처럼 흩어져서 따로 놀아온 세월이었다.
유아세례도 각 교단마다 따로 논다. 세례와 침례도 다르고 유아세례는 안 된다는 데도 있고 줘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교회도 있다. 성찬식도 마찬가지다. 성찬식에서 포도주에 관한 통일된 견해도 두리뭉실이다. 어디는 진짜 포도주, 어느 교회는 그냥 포도 쥬스, 심지어 어느 교회에선 막걸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예 성찬식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성찬 생략형 교회도 있다.
성령에 관한 이해도 각지각색이다. 성령께서 병 고치고 기적을 행하시는 기사와 이적의 시대는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주장하는 교회가 있다. 또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의 시대로 구분 짓는 교회도 있다. 그러므로 개신교라고 똑같은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견해차이를 통일하고 바로잡아 보려고 어딘가와 충돌하다가는 자칫 아리우스처럼 이단으로 몰려서 세상말로 ‘작살’나는 경우를 감당할 용기도, 사실은 관심조차도 별로 없다.
오직 목양 일념! 양들을 잘 키위서 교회만 부흥시키면 됐지, 무슨 시답지 않게 신학논쟁? 그냥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갈고 닦아온(?) 기독교 교리로 대만족하면서 하늘나라만 바라보며 살자는 모양새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게 한가하게 놔주지 않는다. 개신교는 지금 당장 인공지능(AI)에게 내리 받은 설교가 “이게 진짜 설교냐? 아니면 설교 카피냐?”란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교통 정리할 지가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목사님이 다른 목사님 설교를 베꼈다면 기겁을 하고 그 목사님 내쫓아야 된다고 연판장을 돌린다. 그럼 AI가 대신 써 준 설교문은 괜찮고?
지난주 한국의 성결신학대학교에선 ‘로봇의 종교 참여 미래 예측’이란 주제로 미국 녹스칼리지 석좌교수인 로버트 제라시 박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간과 동등해진 로봇이 마침내 인간 고유의 영역인 종교적 실천까지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라시 박사는 로봇이 세례를 받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로봇과의 동료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종교는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신자들이 가족구성원으로 여기는 로봇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 공동체를 찾아 떠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고?
이렇게 세상은 계속 교회를 괴롭히고 있다. 신학적 논쟁은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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