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훈의 書架멍] 내 書架 터주대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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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부엌 살림, 쌀 한 봉지, 간장, 달걀을 샀다. 다행인 건 등산 다닐 때 즐기던 고기 깡통들이 눈에 띄어 그것들도 챙겼다. 이제 남은 돈은 세어볼 것조차 없이 바닥이 났지만 뭐니 뭐니 해도 편히 잘 방, 한 보름 먹을 게 확보된 상태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여행 가방 하나와 단돈 $180으로 시작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침대에 누워 방을 둘러 볼 때면, 자동으로 지금 내 재산은 얼만지를 세보는 습관이 생겼고 그건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았지만 두 달 잠자리가 확보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점심심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 일찌감치 점심 겸 저녁 준비를 했는데, 밥은 새로 사온 냄비에 쌀밥, 반찬은 날달걀에 간장, 그리고 스팸 깡통… 그래도 정말 맛이 있었고 훌륭했다.
미국 도착 첫날 밤은 호텔에서 지냈는데, 정말 편안한 단잠에 푹 빠졌었다. 헌데, 시차 때문이었는지 새벽 잠이 깨서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건 두려움은 없었고, 어떤 일에 막다르더라도 그저 담담하게 정면으로 대처하면 된다는 생각과 각오, 그렇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자신도 생겼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이 밑바닥을 쳤으니, 영어로 nothing but up(이제는 더 내려갈 데는 없으니 올라갈 길만 남았다)이라는 말대로, 나에게는 오직 올라갈 것만 남아서였을까? 돌이켜보면 미국 생활에서, 또 미국, 한국을 드나들면서 수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지만 그걸 다 잘 넘긴 건 전혀 준비, 경험 없이 해냈던 이 옛 사례가 한 몫 한 게 아닌가 싶다.
미국 도착 둘째 날, San Francisco에는 1903년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감리교회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우선 거길 찾아가면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에서 무작정 그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웬걸, 대박이 났다. “건축을 공부하는, 아는 거 많고, 영어 잘하고, 말은 많지만 재미있게 잘 하는 데다가 싸움까지 잘하는 깡패, 하지만 알고 보면 서울 고등학교, 서울 문리대를 나온 崔漢星”이란 물건이 살고 있단다! 대박! 세상에! 한성이는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 아닌가 ! 내 미국 생활 앞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이것 저것 아는 게 많아서 대화가 다양하고 말도 재미 있게 잘하는 데다가 손재주가 남달라 그림 잘 그리고, 음식 솜씨 역시 뛰어나고 믿거나 말거나 싸움질도 잘한다는 인상을 풍겨서 만나는 사람을 당장 매료시키는 내 친구 최한성 - 그날 당장 만났고, 그로부터는 거의 매일 만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지냈다. 나의 고마운 미국 멘토 최한성은 매우 충실한 내 미국 길잡이가 되어 나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도움과 즐거움을 주었다.
우선 내가 해야 할 식당일 코치를 시작해서 나는 미국 도착 닷새 만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헌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식당을 찾아 들어가긴 했지만 막상 직업 구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커피만 시켜 마셨다. 그러길 이틀, 삼일 째,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이 너무 화려해 커피를 시켰다간 전 재산을 다 날릴 것 같아 커피 대신 일자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당장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웨이터 보조, 버스 보이(busboy)가 되었다. Vanessi’s,1936년 시작된 San Francisco 번화가 Broadway의 명문 이태리 음식점이다. 내 미국 생활은 정말 술술 잘도 풀렸다.
스승 최한성이가 코치한 대로 테이블에 하얀 보를 깔고, 식기를 놓는 테이블 셋업에 이어, 손님이 앉으면 물잔 갖다 놓기까지는, 비록 미국 식당에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무난하게 잘 해 낼 자신이 있었다. 마침 손님 두 쌍, 남녀 네 명이 식탁에 앉았는데, 물잔을 갖다 논 다음은 뭘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웨이터가 눈짓으로 빵 바구니를 가리킨다. 그걸 갖다 놓고 돌아서는데 웃음 소리가 나면서 야단이 났다. 뒤돌아보니 빵 바구니 4개로 꽉 찬 식탁을 보고 다들 웃고 야단이다. 분명 내 판단으로는 네 사람, 빵 바구니 넷, 손님 넷이면 곰탕 네 그릇, 내 계산은 결코 틀리지 않은데… 당장 경험이 있다던 내 거짓말이 발각됐다.
결사적으로 열심히 뛰면서 일을 해서인지 더 이상 사고 없이 일이 끝나 집에 갈 참인데, 내 몫이라고 테이블 위에 동전이 놓여 있다. 전부 쓸어 바지 주머니에 넣으니 제법 묵직했다. 손가락이 까매지도록 주머니 속 동전을 세고, 또 세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그게 무려 $10 남짓… 세상에 그리 좋을 수가 없었고, 매일 이 정도 수입이면 곧 부자가 될 성싶었다. 사흘 열심히 일을 하고 나니 이젠 제대로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데, 매니저가 부르더니 스케줄 문제가 있어 며칠 집에서 쉬고 있으면 전화를 할 테니 그 때 보잔다.
허긴 심한 피로를 느끼던 참이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해서 다음 날부터는 전화만 오면 복도로 뛰어나가 전화를 받는데 내 전화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그냥 뛰어나가는데, 열쇠를 가지고 나가는 습관이 전혀 없었던 나는 전화가 오면 일단 뛰어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아파트 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천상 집주인을 불러야 했는데, 매번 속옷차림으로 뛰쳐나가는 내 몰골은 엉망진창… 주인에게 되게 밉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전화가 오지 않으니 전화로 문의를 할까 망설였지만 전화 대화는 부담이 되는데다가 건방지다고 여길까 봐 정장을 차려 입고 직접 찾아가 도대체 어찌 된 건지를 물어보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말은 “너 파면 됐어(You’re fired.)”를 듣기 좋게 한 말이라면서 웃어댄다.
앞으로 큰 일을 할 내가 식당 보조로 죽을 쑬 게 아니라 돈을 써서라도 직업안내소를 찾아 제대로 된 일을 찾아 나섰는데, 당장 나온 것이 저녁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8시간, 대형 보험회사 Metropolitan Life 사무실 청소부 일이다. 낮에 학교 다닐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데다가 후한 월급, 건강보험, 일 년에 두 주일 휴가, 저녁 8시엔 저녁 식사 한 시간…정말 좋았다. 내가 하게 된 일은 백 평 넘는 대리석 main lobby 바닥 물청소이다. 세 사람이 하는 일인데, 첫 번째 사람은 비눗물통에서 꺼낸 걸레로 대리석 바닥을 적시는, 쉬운 일, 세번째 사람은 바닥을 마른 걸레로 닦아내는 쉬운 일, 내가 할 두 번째 일은 비눗물로 흥건한 바닥의 물을 닦는 일이다.
긴 장대 끝에 달린 큰 방석 크기 걸레(mop)은 무겁기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저만치 간 앞 사람은 담배를 피워 물고 나보고 빨리 오라는 눈치, 마른 걸레질을 할 세 번째 사람은 나를 바짝 따라 붙으면서 빨리 가란 압력, 그 중간에 낀 나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 힘든 일을 한 일주일 하고 나니 익숙해져, 그 무거운 걸레를 들어 툭 하고 땅바닥을 후려치면 마치 부채같이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넓게 펼쳐진다.
큰 파티가 있는 주말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데, 파티 장소 정리부터 시작한다. 청소에 나선 나를 본 업주들은 어김없이 다 나에게 job을 주겠다는 제안을 해온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내 mop 질 하는 걸 보면 누구건 모두 다 감탄사를 보낸다. 헌데, 지금 고백이지만, 그 일은 아주 힘이 들어서 그땐 하루 다섯 끼를 먹었다. <계속>
조승훈
서울 고등학교, 고려대학 법과대학, University of San Francisco MBA.
San Francisco 번화가 California & Pork Street 교차점 케이블카 종점 책방 경영
1986~2018년까지, 한국으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책을 직접 선정해서 보냄
매주 주간매경 서평 8년, MBC 일요일 아침 “독서와 인생” 라디오 프로그램 3년 진행
코매디안 조모란(Margaret Cho) 씨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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