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오십견과 허리디스크 - 신묘막측한 연약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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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도발적인 책 한 권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엔도 히데키의 『인체, 진화의 실패작』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교해부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이며, 학문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과학 저술가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몸을 아주 냉정하게 해부합니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분명합니다. 인체는 완벽하게 설계된 구조물이 아니라, 약 5억 년 동안 이어진 지구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거듭된 "설계 변경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진화란 백지에서 새로 그려낸 완벽한 설계도가 아니라, 이미 있던 부품을 재활용하고, 용도를 바꾸고, 급한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해 온 과정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흥미로운 예를 듭니다. 턱은 원래 씹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호흡기관의 일부였고, 그 턱관절을 이루던 뼈 두 개는 나중에 귀 속으로 이동해 청각을 담당하는 이소골이 되었습니다. 결국 씹는 기능을 위해 새로운 아래턱을 급히 추가해야 했고, 새로 만든 턱관절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턱관절 장애가 빈번하고, 턱과 귀가 너무 가까워져 두통과 어지럼증, 이명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부레처럼 단순하게 설계되어 있던 혈관계 역시 육지 호흡을 가능케 하는 폐를 전제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변화 덕분에 우리는 육지에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처럼 고장이 잦은 시스템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몸에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응급 수술의 흔적이 가득하며, 우리는 그로 인한 고질적인 문제들을 안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직립보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허리 통증, 디스크, 탈장, 산고의 고통이라는 고질적인 대가를 남겼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인체가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진화가 선택한 누더기 같은 설계 변경의 흔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십이 넘어가며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턱관절 통증, 허리 디스크, 오십견이 제가 인간으로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살아온 이 몸의 필연적인 부산물이었다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저자가 인간을 조롱하거나 허무주의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바로 보자는 것이지요. 덕분에 우리는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보 신화를 경계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목사로서 마음은 복잡합니다. 우리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편)고 고백했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취약한 몸을 과연 "신묘막측한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경은 인간을 단 한 번도 “기계적으로 완벽한 존재”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았고,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존재이며,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의미를 얻는 존재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너무 완벽한 구조로만 오해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존재인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과학책이 아니라 저에게 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몸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의 대리인으로서 무엇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만물의 영장인 것처럼 으스대며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누더기 같은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이라 불리는 이유는 지배가 아니라 책임을, 자만이 아니라 절제를, 완벽이 아니라 겸손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아파오는 어깨와 허리를 부여잡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시 정리합니다. 인간은 완벽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 이토록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았기에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도 저의 아픈 어깨와 허리는 저의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조심스럽고 은혜로만 살아가도록 저를 붙들어 줍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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