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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세상읽기] 전통의 역설 - 아프리카 출신 마포 로르의 흥보가 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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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3-27 | 조회조회수 :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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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마포 로르(Laure Mafo)는 삼성전자와 코카콜라 프랑스 지사에서 회계감사를 맡던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잘 나가던 커리어를 접고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2015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민혜성 명창의 판소리 공연 한 편 때문이었다. 가사를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음에도, 그 소리에서 울려나오는 원초적인 감정의 파동에 온몸이 전율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이런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 그 질문 하나가 그녀의 인생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오는 5월 10일, 마포 로르는 국립국악원 무대에 홀로 선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흥보가'를 완창한다. 3시간 분량이 넘는 대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명의 소리꾼이 이어가는 무대다. 외국인으로서는 전례가 없는 도전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이 무대를 통해 "판소리 잘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진정한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시선이다. 많은 이들에게 판소리는 여전히 지루한 유물이거나, 마지못해 보존해야 할 전통 문화재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외부자의 눈에는 다르다. 서양 벨칸토 창법이 정제된 화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판소리는 복식 호흡으로 끌어올린 거칠고 호소력 짙은 소리로 삶의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한과 환희를 동시에 토해내는 음악이라고 한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전율하게 만드는 이 힘은, 판소리가 특정 민족의 언어가 아닌 인간 본연의 감정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마포 로르는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파리의 밤거리에서 대형 트럭이 지나가는 소음 속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 연습을 했다고 한다. 판소리 특유의 쉰 목소리는 오랜 수련을 통해 성대에 굳은살이 박혀야만 얻을 수 있다. 그녀는 또한 고어와 전라도 방언이 뒤섞인 대본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와 씨름했고, 자신이 어릴 적 카메룬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하던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한의 정서로 녹여냈다. 뿌리 뽑힌 자의 서러움이 오히려 판소리의 정수에 가닿는 통로가 된 듯하다. 카메룬은 독일, 영국, 프랑스를 거쳐가며 오랜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나는 마포 로르의 판소리를 유튜브를 통해서 들었다. 검은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판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친다. 


K팝이 한국 문화의 외연을 넓혔다면, 판소리는 그 내적 깊이를 증명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명제는 오래된 구호가 아니다. 5월 국악원 무대에서 현실로 구현될 것이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전통의 저력이 먼 이방인의 소리를 통해 되살아오고 있다.


이재호(유튜브 ‘sbnr club’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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