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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절대화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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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3-27 | 조회조회수 :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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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단순히 인류 최초의 양친인 아담과 이브의 목가적 삶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대천사 케루빔이 함께하던 장소였습니다. 에덴은 원초적 성전이자 왕궁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 역시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최초의 형태는 두 영역이 분리되지 않은 ‘융합’ 상태였습니다. 종종 종교 지도자가 곧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사장이자 족장이었고, 300명 이상의 병사를 거느린 군사령관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고대사회에서는 왕과 제사장의 분리를 통해 정치와 종교의 구분이 나타났습니다. 왕은 제사장을 후원하는 존재였고, 제사장은 구별된 종교 영역의 지도자였습니다.

   

서양의 중세는 기독교에 독특한 위치를 부여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각 나라에 종교적 수장이 존재했지만, 서유럽의 로마교회에서는 교황이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중세의 은총-자연이라는 위계질서 속에서, 은총에 속한 교권은 자연 질서인 정치권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이러한 위계를 깨뜨린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후 국가와 교회, 정치와 종교는 서로 구별된 영역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두 영역이 분리되면서도 각기 고유한 권위를 지닌다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습니다. 이로부터 ‘정교분리’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이를 각 영역의 ‘구별’ 혹은 ‘분리’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종종 오해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오해는 정치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일을 다루고, 종교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만을 다룬다는 생각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부터 현대의 메노나이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주장이 존재하지만, 기독교 역사 전반에서 이러한 급진적 분리 모델은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는 국가 영역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땅은 한 평방 인치도 없다”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두 번째 오해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상하관계나 위계질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종교 우위의 구조는 중세의 특징이었고, 정치 우위의 구조는 절대국가나 전체주의국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교권이나 절대 권력에 의해 인권과 자유가 침해되는 갈등이 반복되었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 종교개혁 이후 분열된 신교와 구교 사이의 갈등 속에서 정치와 종교가 얽힌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벌어진 30년 전쟁(1618~1648)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남겼고, 이후 베스트팔렌 조약(1648)을 통해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미국의 정치신학자 마크 릴라(Mark Lilla)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정치와 종교의 ‘대분할’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정치적 정당성을 특정 ‘정통 신학’에 의존하는 한, 교파가 분열되어 갈등하는 세계에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정치를 종교에서 연역하지 말자’는 생각, 즉 정교분리의 원리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릴라는 이러한 사상의 형성에 토마스 홉스,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과 같은 정치철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미국 역시 개신교가 다수인 상황에서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해 ‘정교분리의 벽’을 세우고 국교 수립을 금지함으로써 종교적 다원성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분리의 균형 상태가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란과 같은 신정국가,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 그리고 일부 공산주의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종교의 정치화 혹은 정치의 종교화는 여전히 자유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정교분리는 보편적으로 정착되었다기보다, 여전히 긴장 속에서 유지되는 하나의 실험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시민을 설득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 운동이나 정치신학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마크 릴라의 경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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