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정영광 선생의 부음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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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아침에 교회 묘지를 관리하시는 C 장로님이 필자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정영광 씨의 자녀라고 하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계시는데 곧 임종하시게 되어 묘지가 있는 로스힐스에 연락을 했더니 교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묘지를 사용할 경우 교회 담당자의 싸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영광 씨는 교인으로 등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담당 장로님은 정영광 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기에 필자에게 그분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문의하신 겁니다. 묘지 명부에는 이름이 올라 있으나 실제 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영광 씨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는 교회 예배에 20여 년간 참석하였습니다. 그분이 교회에 오시는 것은 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시간은 사도신경이 시작할 때면 들어왔다가 축도하기 전에 나갑니다. 교회의 식사에 한 번도 참석한 일이 없습니다.
교인들과의 교제가 없으셨습니다.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1970년대 유학생으로 오셨습니다. 이민 초창기 가발 사업으로 사업의 기반을 일찍이 잡으셨습니다. 이후 다운타운에서 메뉴팩처를 하시어 큰돈을 버셨습니다. 1980년대 베벌리힐스 부촌에 한국인이 한두 명 집을 소유했을 때 그곳에 집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자녀는 딸만 다섯이 있습니다. 모두가 베밸리힐스 고등학교를 나와서 좋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더욱 특별한 것은 필자가 목회하는 동안 어머니를 통하여 아들 집을 구경하게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었는데 그 집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이웃이나 친지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동안 듣기로 여러 도시에 상업용 건물을 소유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오래된 구형입니다. 입은 옷도 한 번도 양복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셨습니다. 20여 년 전 맥도널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졍영광 씨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장님은 큰 부자인데 이런 아침을 드십니까? 어떻게 늘 같은 옷만 입으십니까?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 이 옷 10벌이 있습니다. 같은 옷이 아니라 매일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 사람들이 볼 때 같은 옷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큰 매장을 몇 곳 가지고 있어 매일 돈을 몸에 지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영광 씨의 어머니는 고 정삼녀 권사님이십니다. 정 권사님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가 되신 것은 누구의 전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몇 개월 후 심방을 요청하셔서 방문하였을 때 놀라운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죽어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답니다.
"사랑하는 딸아, 이것을 받으라"며 머리에 모자를 씌어주셨습니다. 평생 처음 상을 받아 보셨습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천국 황금길을 행복하게 걸어가는데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데 자신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자는 개털 모자인데 다른 사람은 금 면류관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어린 시절 교회 다니던 것이 생각나 출석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옷장에서 보자기에 싼 것을 내어주시며 이것을 팔아 교회당 건물을 사 달라고 하셨습니다. 벌써 42-3년 전의 일입니다. 일산 금촌지역에 있는 땅문서들이었습니다. 교우 중 법조인이 계셔서 그분에게 책임을 맡겼습니다.
2주 후 정영광 씨가 교회에 와서 어머니가 바친 땅문서를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긴급 당회를 통하여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부인이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인도 그곳으로 가시게 됩니다. 정영광 씨는 이후 매년 연말이면 500불의 헌금을 수십 년간 보내오셨습니다.
그러다가 수년 전부터는 1000불씩 헌금을 하셨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머니의 개털 모자를 바꿀 기회를 아들이 빼앗아 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장례절차에 대하여 알려온 것은 없느냐고 전화하시는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장례는 자녀들이 장례식 없이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 아버지에 역시 그 딸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6년 5월 8일
이상기 목사 (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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