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맨발의 청춘을 넘어 맨발의 노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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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맨발의 노인 최춘선 할아버지를 다룬 책과 비디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30년 동안 맨발로 서울 지하철을 오가며 전도하셨습니다. 때로는 광인으로 오해받아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자와 가슴의 흉배에 전도 표어를 붙이고,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미스 코리아 유관순”을 외쳤습니다. 춘하추동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신을 신고 다니시라 권면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남북통일이 되면 신겠습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다섯 자녀를 교육자로 키워낸 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도 맨발로 지하철 안에서 전도하다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의 외침이 생생합니다. “왜 두 한국인가(Why Two Korea)?”
요즈음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맨발 걷기’(earthing)를 합니다. 고국에 잠시 머물 때, 동네 야산을 오를 때면, 산기슭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직접 땅을 밟는 행위가 혈액 순환을 돕고 스트레스 해소와 체중 조절에도 유익하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 친구 목사님과 함께 지자체에서 잘 관리하는 시골 산기슭을 맨발로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발 보관대와 수돗물 시설까지 마련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노년에 이르러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이 등장합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출애굽을 이끈 모세입니다. 모세는 80세가 되었을 때 민족해방의 꿈을 이미 접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신을 벗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당시 종은 신을 신지 않았기에, 맨발은 종의 표지이기도 했습니다. 샌들을 벗으라는 명령은 거룩한 자리에서 속된 것을 벗어버리라는 요청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신을 온전히 굴복시키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모세는 거룩한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했고, 하나님은 민족해방과 가나안으로의 이민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샌들을 벗는 또 다른 장면은 광야 40년의 세월이 지난 뒤, 80세를 넘긴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서 나타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르렀고, 백성은 그곳에서 할례를 받아 언약을 새롭게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찰하던 중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수 5:14). 여호수아가 그 초자연적 존재에게 엎드려 절하자, 그 존재는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 5:15). 많은 신학자들은 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현현’(Christophany)으로 해석합니다. 여호수아 역시 신을 벗음으로써 전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맨발의 청춘도 사용하시지만, 맨발의 노년도 부르십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봉사하던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역시 맨발로 섬겼습니다. 성경은 제사의 규정을 말하면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의복과 모자, 띠, 흉배와 에봇(ephod, 앞치마)은 자세히 기록하지만, 신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때 손발을 씻고 맨발로 봉사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30세에서 50세 사이에 봉사했지만, 대제사장은 종종 노년에 이르러서도 직무를 감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스로 묻게 됩니다. ‘나는 세속적인 신을 벗었는가,’ ‘나는 하나님의 종인가, 사람의 종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종인가?’ 모세와 여호수아도 신을 벗은 뒤에야, 민족해방과 국가 건립이라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남원골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과 한남동의 맨발의 최춘선 선생 역시 사명의 길을 걷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맨발의 노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만 세속의 신발을 단단히 신고 벗지 못하는 제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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