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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나만의 황금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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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2-19 | 조회조회수 : 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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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호스피스 사역을 시작하기 전, 저는 늘 황금률(Golden Rule)을 떠올립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께서 주신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하여, 때로는 익숙함 뒤에 그 무게가 가려지기도 합니다. 서구 사회에서 이 원칙을 '황금률’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시대와 종교를 초월해 인간관계 속에서 변함없이 증명된, 가장 고귀하고 생명력 있는 가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병원과 호스피스 현장에서 이 황금률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생생한 현장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 임종을 앞두고 말 한 마디 내뱉기조차 버거운 한 환자 곁에 앉았습니다. 평생 독실한 믿음으로 살아오셨지만, 지난 2년간 암과 투병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내신 분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문턱에 선 그분께 저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믿음은 굳건하신지, 가슴에 남겨둔 마지막 말씀은 없으신지, 혹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은 없는지...


하지만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문득 멈춰 섰습니다. 제 안에서 이런 질문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저 침대에 누워 있다면,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나는 과연 무엇을 바랄까?”


저는 질문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말 대신 그분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분도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 침묵 속에서 조용히 그분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속 황금률은 새롭게 새겨졌습니다.


“훗날 내가 호스피스 침대에 누웠을 때 받고 싶은 그 돌봄을 지금 내 앞의 환자에게 드려라.”


말하기 힘든 나를 누군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는데.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내 몸을 누군가 붙잡아 주면 좋겠는데.

어떤 날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서 죽어가는 나의 이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온전히 봐주면 좋겠는데.


이제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이 돌봄이 훗날 내가 받고 싶은 바로 그 돌봄인가?”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인정,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존중,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돌봄.


그것을 먼저 주는 것 - 참으로 귀하지만, 그래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 그것이 "황금률"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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