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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민주주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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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2-18 | 조회조회수 : 1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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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종차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 나라를 세운 이들은 백인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역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등 타 인종을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보통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백인에 의한 흑인 혹은 우리 같은 아시안에 대한 차별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논란은 매일 아침 일기예보처럼 반복되는 뉴스이지만, 최근 정치권에서는 다시 한 번 논란이 불거졌다.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에 빗댄 합성 이미지를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가, 거센 비판이 일자 곧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잇따랐고, 일부 중진 의원들까지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민주당 측에서는 “역겹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미 언론들은 ‘원숭이 비유’가 과거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미국 흑인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해 온 대표적인 ‘비인간화’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정치적 정적이라 하더라도, 아프리카 밀림의 원숭이에 오바마 부부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전직 대통령 부부가 아닌가. 트럼프 행정부의 백인우월주의 성향까지 거론되며 파장이 확산되었지만, 백악관은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게시물의 삭제 여부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민주주의의 형님 국가’라 불리는 미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미국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부른다. 나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부러워 ‘전두환 국보위 시대’에 뒤돌아보지 않고 이민길에 올랐다. 미국은 인권과 자유, 평등의 가치를 세계에 설파해 온 나라였다. 그 점이 존경스러웠고, 그런 미국은 모든 이민자를 품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해주는 고마운 나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럭저럭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유색인종의 시선에서 보면, 그 화려한 수사는 언제나 불편한 균열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제와 식민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인간화의 상징이며, 가장 오래되고도 잔인한 인종차별의 언어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그를 “미국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출생자다”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이 정치적 무기로 활용되기도 했다. 백인 대통령에게는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의혹들이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거둔 사건은 단지 흑인 공동체의 비극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약자의 몸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 세계가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흑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전역에서 이민자들, 서류 미비자들, 난민 신청자들은 여전히 단속과 추방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가족이 분리되고, 어린아이들이 철창 안에 머물며, 노동 현장에서 착취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투표권이 없거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쉽게 무시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선택으로 움직이지만, 그 품격은 소수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수의 박수 속에서 약자의 침묵이 강요된다면, 그것을 완성된 민주주의라 부르기는 어렵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와 인권의 등대라고 자부해 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빛이 국경 밖을 비추기 전에, 먼저 자국 내의 그늘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인종차별을 방치한 채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고, 이민자와 불법체류자,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을 외면한 채 인권을 설파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차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에서 끝나지 않는다. 차별받기 쉬운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 그 지점에 이르지 못한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설익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완성은 가장 힘없는 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종차별 같은 험한 꼴 안 당하고 곱게 늙은 후에 조용히 무덤에 묻히고 싶은 한 이민자의 소소한 꿈이 요즘 자꾸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이민자란 게 자꾸 두려워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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