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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거룩한 전쟁의 전통과 그 현대적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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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2-17 | 조회조회수 : 6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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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라는 짧은 군 복무를 위해 저는 학군단, 하계 병영훈련, 그리고 초급군사교육반(OBC) 훈련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군 복무의 핵심이 ‘훈련’이구나 생각됩니다. 개인화기부터 공용화기, 중화기, 대전차 로켓, 여러 종류의 박격포를 운용하고 사격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부대 배치 후 현장에서 밤낮으로 훈련에 몰두하던 일이 이제야 비로소 추억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훈련받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으로 전쟁을 치르는 사건이 출애굽기 17장에 등장합니다.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고 3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르비딤 광야에서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습니다. 당시 용맹한 여호수아 장군이 지휘를 맡았으나, 군사훈련 경험이 전혀 없는 노예와 농민 출신의 백성은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손을 들어 기도하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는 위태로운 형국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전승을 주셨습니다. 또한 모세에게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고 맹세하시며 이 전쟁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 첫 전투인 아말렉 전투에서 우리는 ‘거룩한 전쟁’(Holy War)의 단초를 발견합니다. 성경이 직접 ‘거룩한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 전쟁의 주관자는 명백히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수아와 백성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며, 승리는 기적적인 기도 응답을 통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주도하시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용사이신 하나님’(God the Warrior)의 군대였습니다.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드(Gerhard von Rad)는 이러한 거룩한 전쟁이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신학적 전통의 중 하나이며, 단순한 군사행동을 넘어 신학적 의미가 담긴 ‘의전’(liturgy)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거룩한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으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반복적인 약속으로 확증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여호수아와 사사시대를 거치며 거룩한 전쟁은 더욱 완결된 형식을 갖추게 됩니다. 폰 라드는 거룩한 전쟁이 문학적ㆍ의전적 정형성을 가진 하나의 양식이자 제도였다고 소개합니다. 거룩한 전쟁은 먼저 신탁(Oracle)으로 결정되며, 나팔을 불어 군대를 공적으로 소집합니다. 이어 군대를 정결하게 하는 회개와 씻음의 성별 의식, 언약궤의 동행, 전투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승리, 그리고 적군에 대한 진멸(Herem)과 봉헌, 그리고 승리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가집니다. 

   

반면 종교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했습니다. 베버는 거룩한 전쟁을 국가적 조직이나 상비군이 없던 부족연맹 시대,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나타난 특수한 전쟁 형태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전쟁의 전형을 사사기 4-5장의 드보라와 바락, 사사기 20장의 기브아 사건, 그리고 사무엘상 11장에 나오는 왕정 초기 사울이 길르앗 백성을 구원하는 사건 등으로 한정하며, 제도화된 왕정 이후에는 그 원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가 종교가 분리된 현대 사회에 여전히 ‘거룩한 전쟁’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오늘날 전쟁의 정당성은 종교적 거룩함보다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라는 윤리적 관점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폰 라드와 막스 베버는 거룩한 전쟁의 전통이 왕정과 그 이후 사라졌다고 보았으나, 현실은 다릅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지하드주의자, 알카에다, 하마스, 헤즈볼라 그리고 이란의 신정정치 세력과 탈레반, 나아가 이스라엘의 극우파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 내에서는 아직도 거룩한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신앙을 폭력의 정당화를 위한 장치로 오용하지 않는 날카로운 분별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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