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우버 드라이버, 신기사!
페이지 정보
본문
미국 땅에서 살아남기를 어느덧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면 굽이굽이 사연 없는 길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때가 떠오릅니다.
머리가 터지게 박사 논문을 써서 제출했지만 통과에 실패하고 박사과정에서 제적이 되었고, 그 후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담임 목회지에서도 2년 만에 쫓겨나듯 떠나야 했던 그 시절 무렵입니다.
경제적인 궁핍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저는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보따리 설교자, 세탁소 직원, 아마존 트럭 배달원... 그리고 한인 이민 목회자들의 드림잡 '우버 드라이버'까지 말입니다. 저는 4년간 우버 드라이버, 신기사였습니다.
우버 드라이버의 삶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운수 좋은 날은 제법 짭짤한 수입에 쇠고기라도 사들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어떤 날은 손님을 기다리며 정처 없이 길 위에서 기름과 시간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밤늦게 취객이 뒷자리에 남긴 토를 닦아내며, 차가운 밤공기 속에 홀로 차를 세워놓을 때면 가슴 한구석에서 절망감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풀타임 병원 원목으로 부름받기 전까지, 저는 길 위의 우버 드라이버로 지냈습니다. 갈수록 경쟁도 심해지고 결국에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벌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단했던 4년을 결코 헛되게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버 드라이버를 하던 그 기간은 제게 삶의 학교와 같았습니다. 수많은 낯선 이들을 뒷자리에 태우며, 저는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저마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문 원목의 가장 중요한 훈련은 바로 경청(listening) 훈련입니다. 저는 우버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아픔을 민감하게 듣는 액티브 리스닝(Active Listening)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훗날 저의 수퍼바이저는 이 시간을 두고 "당신은 이미 길 위에서 '엑스트라 CPE(임상사목교육)'을 받은 준비된 원목"이라고 치켜 세워 줄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나마 서툴렀던 영어도 손님들과의 대화 속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고통받는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의 언어'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몇 해 전, 가족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우버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우버 드라이버와 30분 내내 울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제 아들 이삭이가 제게 그러더군요: "아빠, 왜 그렇게 말이 많으세요? 너무 수다스러워요(You're so talkative!)"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얘야, 아빠가 우버하던 버릇이 남아서 그래.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맞춰주고, 웃게 해줘야 아빠 마음이 편하단다." 그제야 아들은 아빠의 지난 시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그 시절, 소망조차 보이지 않던 우버 드라이버 시간은 사실 저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의 학교였습니다. 광야 같았던 그 길은 지금의 저를 만든 삶의 훈련장이었고, 저는 4년간 다닌 그 우버 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병원과 호스피스 현장에서 누구를 만나든 그들의 아픔을 깊이 품을 수 있는, 조금은 수다스럽지만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원목이 되었으니까요. 정말이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신동수 목사 (병원/호스피스 원목)
- 이전글[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꾸준함이 실력이다 26.02.10
- 다음글[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2 2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