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마룻대’를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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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한국이 항공우주 개발사업에 뛰어들면서 인공위성을 만들 때였습니다. 1995년 무궁화 1호라는 이름의 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발사 로켓 부품 이상으로 수명이 반 이하로 주는 바람에 반쪽짜리 성공에 머물렀습니다. 그 이듬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인공위성 무궁화 2호가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공위성 발사를 위해 한국에서 현지에 파견된 관계자들과 참관단 등 20여 명은 성공적인 발사를 위해 조촐한 성공 기원식을 가졌습니다. 행사는 무궁화 위성에 그려진 태극기를 향한 경례에 이어 발사 성공 기원과 묵념의 순서로 이어졌는데, 당시 세계 언론의 시선을 모은 것은 로켓 발사대 앞에 놓인 통돼지 바비큐였습니다. 이날 발사장에서 벌어진 바비큐 파티는 전례가 없는 ‘서양식 고사’였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성공을 기원하거나, 집안이나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고사(告祀)’ 지내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더구나 그런 고사는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나 무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식 건물을 지을 때도, 정부 차원의 큰 공사를 시작할 때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면서도 지내는 일종의 전통 의식으로 여겨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고사를 지낼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돼지머리였습니다. 시장에서는 고사상에 올라갈 돼지머리를 파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웃는 돼지머리는 가격을 조금 더 받기도 했습니다. 평안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쳐 달라는 미신적 행위인 고사가 첨단 과학 기술의 꽃이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 발사대 앞에서 벌어진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당시 고사를 지낸 관계자들과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발사의 성공을 기원하며,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서양식 고사’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사’와 비슷한 전통으로 ‘상량식(上樑式)’이 있습니다. 상량식은 건물을 지으면서 완성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가장 높은 기둥인 ‘마룻대(상량)’를 가로로 올리면서 건물에 들어설 사람들의 복을 빌고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음에 감사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인부들을 대접하는 행사입니다.
상량식이 한국만의 전통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교회 옆 건물에서 비슷한 행사를 한다고 초대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행사를 위해서 50~60명이 앉을 수 있는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타코 트럭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성조기를 단 크레인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크레인에 매달린 우람한 ‘빔(Beam)'이 건물의 가장 높은 곳 한 가운데에 자리 잡으면서 ‘서양식 상량식’을 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간에 맞춰 교회 마당으로 나가니 50~60명은커녕 회사 관계자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타코를 먹고 있었습니다. 인부들은 이미 식사를 끝냈는지 하던 일을 부지런히 할 뿐이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교회 앞을 떡 하니 가로막는 건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교회 앞 사거리에 새로운 건축물이 속속 들어오면서 커뮤니티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창고 임대업을 위한 상업용 건물이지만, 교회와 담을 맞대고 이웃으로 들어오기에 상량식을 통해 긴 공사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했습니다. 건물주는 자신도 교회와 함께 협력하게 되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회사 관계자들은 타코 몇 개와 음료수를 마시더니 금세 자리를 떴습니다. 축하의 박수도, 건물주의 감격 어린 연설도, 현장 감독에 대한 치하도 없었습니다.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한 의자와 테이블은 손님 한 번 맞지 못하고 온 모습 그대로 다시 트럭에 실렸습니다. 썰렁한 서양식 상량식이었지만, 건축을 안전하게 마무리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양식 상량식’에서 타코 몇 개 얻어먹고 돌아서는데, 우리에게도 신앙의 상량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룻대를 올리므로 건물이 완전하게 서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이라는 신앙의 마룻대를 올려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 한곳에 모인 사람들 위에 성령이 임했던 것처럼, 성령이라는 신앙의 마룻대가 우리의 신앙 여정을 이끄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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