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세상의 악은 하나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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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세상이 이렇게 엉망입니까?” 신앙의 유무를 막론하고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건과 비극에 접하면서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수십만이 죽어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팬데믹의 여파로 돌아가신 많은 이웃,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과 살상, 가난과 핍박, 그리고 지속되는 범죄와 악한 세력의 활동을 보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반문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의문과 문제 제기는 현재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욥기나 시편, 예레미야 등의 선지서에는 의인들의 항의성 기도가 속출합니다. 의인을 돌아보시기에 너무 늦으시는 하나님, 아니 죽을 때까지도 편안한 악인의 종말, 지속되는 타락한 권세의 미혹과 훼방을 방조하시는 듯한 하나님의 참으심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나님은 무력하신가” “악은 너무 강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주장뿐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섭리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 안에 하나님에 버금가는 특별한 존재를 창조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들기 너무 무거운 장애물을 만드셨는가?” 외견상으로 볼 때, “그렇다”라는 말이 적절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 안에서 창조하셨으나, 그들이 반역한 후에, 하나님은 괴로워하시고, 분노하시고, 결단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후에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자신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를 창조하신 사실 속에 문제의 발단이 있습니다. 천사나 인간과 같은 의지적인 존재는 독립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능함 안에서 최고의 존재, 자신과 같은 판단을 내려 순종과 거역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의지적 존재를 창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지적인 존재의 타락과 행악이 하나님의 책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지적 존재의 가류성(可謬性, falliblility), 즉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남겨두었으나, 이 가류성이 유죄성(有罪性, peccability)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사 중에는 의지를 사용하여 타락하지 않은 천사도 많이 있습니다. 의지적인 존재가 타락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뜻에 순종하지 않고, 의지로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기 때문입니다.
천사나 인간이 의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습니다. 인격적 존재의 선함과 아름다움은 자신의 선한 결단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를 로봇이나 자동 인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닮은 꼴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기에, 의지적 결단으로 선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움은 우리의 자발적 결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발돋움하도록 능력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의 허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죄와 타락에 대한 대안도 미리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그의 후손의 실패를 뒤집는 두 번째 아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입니다. 성령을 보내 신의 성품에 동참한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선은 악을 뛰어넘습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현세의 시간 속에서 종결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의 탁월함에 따른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그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만, 하나님은 의지적 존재의 잘못된 결정을 역전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켜, 선과 사랑을 완성하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구원의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악은 우발적이지만, 선은 영원하고 압도적입니다. 악을 소멸시키는 종말론적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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