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기독교에 대한 폭력이 이스라엘에서? > 칼럼 | KCMUSA

[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기독교에 대한 폭력이 이스라엘에서?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기독교에 대한 폭력이 이스라엘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6-05-05 | 조회조회수 : 8회

본문

지난주 예루살렘 시온산 인근에서 한 남성이 백주 대낮에 프랑스 수녀를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기독교 혐오’ 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유대교 남성들이 착용하는 술 장식이 달린 의례용 치트를 입고 있어 유대교 신자로 보인다고 한다. 현지 경찰은 현재 조사 중이다.


나 같은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당장 험한 말이 튀어나올 법하다. “세계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스라엘에 바치는 돈이 얼만인데, 감히 기독교인을 폭행해?”라며 핏대를 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성지순례를 다닐 때 ‘통곡의 벽’에서 만났던 유대교 성직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독교 순례객들을 개가 닭 보듯 하는 불친절한 분위기에서 나는 이미 파악이 되었다. 그때 느꼈던 낯선 거리감이 지금의 사건과 겹쳐진다.


현지 경찰 발표에 따르면, 가해자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공격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라고 한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일부 극단적 유대교도들에 의해 기독교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과 폭력 행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괴롭힘과 물리적 공격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거룩한 성지라 여겼던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유대인하면 내 개인적인 씁쓸한 경험도 있다. 금년 초 우리 옆집으로 유대인 한 가정이 이사를 왔다. 들어오자 마자 앞마당에 울타리를 만들었다. 집 주변을 돌아가며 펜스를 치고 키 큰 나무를 심고 야단법석이었다. 직업은 건설업자다. 아침엔 그와 일하는 인부들이 트럭 몇 대를 타고 들이닥친다. 조용하던 콜더섹 길거리 파킹 자리가 주차장을 방불케 되었다. 당장 이웃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 지역 시의원인 한국계 존 리 LA시의원 사무실에 탄원서랑 ‘불평고백서’를 접수시켰다.


이러자 유대인 주인은 감시 카메라 작전으로 나왔다. 지붕 밑은 말할 것도 없고 집 마당 귀퉁이마다 시큐리티 카메라를 설치해서 누구 하나 범접하면 카메라를 돌려서 신고라도 하겠다는 듯 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지붕 위엔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를 하늘 높이 펼쳐놓고 산다. 자기들만 옳고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한 고립주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하면 조건 없이 일종의 영적 친밀감을 느낀다. 껌뻑 죽는다.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이기 때문이다. 담임목사님 설교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유대인을 마치 신앙 공동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처럼 느끼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전통을 통해 하나님 신앙을 공유하지만, 시오니즘에 의해 1945년 건국된 현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은 다양한 정치·사회적 현실 속에 존재한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는 세속적이고 자유로운 문화가 강한 곳이다. ‘종교 국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세속도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십자가 처형을 둘러싼 해석은 오랜 역사 속에서 왜곡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는 ‘신 살해자(Deicide)’ 개념이 반유대주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유대인 전체에게 예수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공식 선언하며 이러한 해석을 바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전통을 지켜왔고, 중세 유럽에서는 금융업 등을 통해 ‘돈 많은 큰 손’으로 역할을 맡으며 시기와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결국 ‘홀로코스트’란 비극으로 이어졌다.


기독교는 분명 유대교 토대 위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예수의 가르침을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이스라엘을 종말론적 징조와 연결 짓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 빠진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예수 재림의 필수징조로 보고 있다. 종말의 때에 육적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해야만 세상의 끝과 재림이 완성된다고 보는 시나리오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온 땅’의 의미를 왜곡하여 지리적·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문자적 해석에 기초한 잘못된 성경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좌우지간 다시 묻고 싶다. 서로 다른 종교를 향해 돌을 던지고, 갈등과 폭력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성지’라고 부를 수 있는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 땅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그래서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 성지순례를 가려면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경고장을 날린다면 이것마저 반유대주의라고 욕을 먹어야 하나?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