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고개를 끄덕이게 한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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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서커스가 열렸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서커스 공연장에 모인 관객들은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들의 아슬아슬한 공연을 보며 마음졸였고,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웃음을 한껏 터트렸습니다. 서커스의 하이라이트는 코끼리 쇼였습니다. 작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코끼리는 조련사의 손짓에 두 발을 들고 춤을 추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코끼리 조련사가 관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코끼리는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일 수는 있지만, 좌우로 흔들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코끼리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게 하면 상금을 드리겠습니다.” 조련사의 손에는 빳빳한 백 달러짜리 지폐가 들려 있었습니다.
관객 중에서 무대로 올라온 사람들이 코끼리의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게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좌우로 뛰어다니며 코끼리의 주의를 끄는 사람도 있었고, 코끼리의 귀를 잡아당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애꿎은 노력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지만, 정작 코끼리는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 뿐 좌우로 가로저을 낌새도 없었습니다.
그때 양복을 잘 차려입은 점잖은 신사가 코끼리에게 슬며시 다가갔습니다. 그는 코끼리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코끼리가 기겁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크게 가로저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련사가 깜짝 놀라며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코끼리가 고개를 그렇게 크게 가로저었습니까?” 신사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코끼리 귀에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너도 이민 목회 한번 해 볼래?’라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팔로스 버디스에 있는 가톨릭 수양관에서 열렸던 ‘설교자의 글쓰기’ 세미나의 개회 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사람들은 처음에는 웃었지만, 줄곧 웃을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도 이민 목회 한번 해 볼래?”라는 질문에 코끼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는 말에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었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쉽지 않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버틸 힘조차 사라지는 현실을 지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남모르는 고민을 안고 맡겨진 사역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역자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뉴잉글랜드, 보스턴, 뉴욕, 텍사스, 콜로라도, 아이오와, 시카고, 시애틀 등 미전역과 캘리포니아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40여 명의 목회자들과 배우자들은 김기석 목사님과 김영봉 목사님과 함께 행복하고 특별한 사흘을 보냈습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설교자의 글쓰기’였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편지로 이 땅에 보냄 받은 설교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써 내려가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수양관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평화가 넘쳤습니다. 새벽에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책길은 행복한 하루로 이끄는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시간마다 이어지는 강의와 나눔은 ‘글쓰기’ 기술을 배우려는 섣부른 마음에 존재의 변화를 꾀하라는 엄숙한 명령을 전했습니다.
수양관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사흘간 한국 음식을 못 먹을 것이라는 우려는 끼니마다 주방에서 내오는 밥과 김치로 인해 기우가 되었습니다. 수양관에서는 저희를 배려해서 특별 메뉴를 준비했습니다. 넉넉한 간식은 교제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고, 야참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둘째 날 저녁에 고계홍 장로님과 고순자 장로님께서 한인타운에서 공수한 김밥과 떡볶이는 한국 음식이 궁한 곳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의 마음마저 위로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을 초대해서 교회에서 가졌던 집회 후에 잇따라 열린 세미나였기에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분주했지만, 참석하신 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배움을 통한 ‘울림’, 사귐과 교제를 통한 ‘어울림', 신랄한 설교/칼럼 비평을 통한 ‘떨림’을 통해 설교자의 삶이 단단해지는 세미나였습니다.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코끼리에게 던졌던 질문을 세미나를 마치면서 다시 던졌습니다. “너도 이민 목회 한번 해 볼래?” 이번에는 코끼리가 고개를 아래위로 크게 끄덕일 것 같습니다. 설교자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를 일깨워 준 이번 세미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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